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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Mar 07. 2016

어느 예술가의 여행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무일푼 세계일주와 같다.


20년 춤을 췄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에 대하여 소개를 하자면, 나는 정확하게 5살이 되었을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건데 발레 외에도 피아노, 미술, 논술, 수영, 영어학원을 다녔었지만 초등학교 입학때 발레 외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점은 내가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발레, 재즈, 스포츠댄스 등을 배우러 다녔고 평소에도 춤을 즐겼다는 것이다. 남들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무대던 모레바닥이던 가리지 않고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춤을 추는 것은 좋았으나 이것이 전공이 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비싼 레슨비와 빡빡한 연습은 내가 이것을 전공해서 나중에 밥벌이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대학입시를 위해 개인과외에 열정을 쏟는 다른 친구들처럼 나는 발레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즐기면서 추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위해 추게 되었다.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

글쎄...

나는 춤을 추면서 돈을 생각했다. 무용선생 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춤을 가르치면서 엄청나게 비싼 돈을 받는다. 예술이란 비싼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예술을 하고 있으니 가르치는 사람이 되서 돈을 많이 받아야 겠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겠다.


이 생각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에 하게 되었다. 무대에서 추는 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춤일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닌 정해진 동작을 기계처럼 완벽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인형놀이 같은 것.

 내가 좋아서 한 것인지 오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 국민대학교 무용전공 11학번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도 가고 싶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졸업장은 받자는 생각으로 다니게 되었다.



남들은 부러워했다.

죽도록 수능공부를 해서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전공을 바꾸기도 하고 그냥 다니기도 하고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에 방황들을 한다던데, 예술을 하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꿈이 정해져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다 되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했어도 어디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무용을 전공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소개를 하면 그냥 예술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니면 그냥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할 때도 있다.

교육학을 전공한다고 속일 때도 있다. (속이는 건 아니다. 교육학도 같이 이수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춤을 추는 내 자신을, 예술이라는 분야를 걷고 있는 나를 부끄러워했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내 꿈은 뭘까?

나는 춤을 좋아한다. 좋아했다. 그래서 무용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싫은 걸까?

춤이 싫은 것일까? 이런 상황이 싫은 것일까?


예술이라는 조직에서 라인을 타고 노예처럼 붙어있고, 

최저임금 보다도 못 한 무급으로도 일을 하고,

감정과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이상일 뿐.

그것을 현실에서 표현하면 그것은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행위.

표현의 자유도 없는 예술가.



휴학을 하고 춤을 접었다.

나에게 춤이란 아침에 눈을 뜨면 먹는 밥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처음으로 아침밥을 굶기로 했다.

여기저기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처음 비행기를 타서 유럽으로 여행을 다녔다.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제주도...

모두 자유여행이다. 항공권, 루트, 숙박 등 모든 것이 친구들과 여행 유경험자의 조언을 바탕으로 말이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발 길 닿는 길로 마음껏 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서 잊혀진 감각들이 살아난다는 것.

나도 모르게 내가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 점.



나는 지금 제주도행 티켓을 들고 있다.

여러번 고생해서 제주도를 왕복하며 원룸도 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과 관련된 직장을 구한 것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경험을 쌓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티켓.

주변에서 다들 힘들고, 돈도 되지 않고, 뭐 하는 거냐고 말린다.

그래도 나는 확신했다.

이 곳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가야만 한다. 두렵지만 나를 믿고 직진.

이제부터 제주에서 나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시간이 흐른 뒤, 2017년이 되었다. 벌써 제주도에 온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국민대학교에 다녔던 것에, 무용과를 무사히 졸업했다는 것에, 그곳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여행을 다녔던 것에 대해, 지금 제주도에 있다는 것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나의 생각은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경험들이 다 나의 피와 살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더 많은 경험들을 먹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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