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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Feb 11. 2021

글쟁이가 붓을 들면...

나는 빈 종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종이를 보면 뭐라도 끄적끄적 적지 못해 안달이다. 주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뭐라고 적을 수 있고, 꽉 채울 자신도 있다. 내가 브런치에 글쓰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새하얀 빈 종이를 닮아서이지 않을까?


빈 종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글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려고 붓을 들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새하얀 캔버스는 그대로였다. 뭘 그려야 할까?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할까? 어떤 붓을 사용해야 할까? 그려야 할 것을 정했음에도 어떤 붓을 사용해야 할지 몰라 벌벌 떨었다. 물감은 아주 쥐똥만큼 짰다. 새하얀 캔버스 위에 색이 칠해지는데 걸리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뭔가를 그렸는데,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로 이 그림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내 손은 여전히 떨렸고, 캔버스에는 요상한 것이 그려졌다. 그마저도 멈칫거렸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에게 선생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유화 물감이라서 이미 그린 것 위에 덮어서 칠하면 되니까. 실패한다는 두려움을 버려.

그 말을 듣고, 나는 물감 하나를 골라서 팔레트에 잔뜩 부었다. 그리고 가장 크고 납작한 붓으로 물감을 퍼서 캔버스 전체를 덮었다. 처음에 무엇이 그려져 있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가장 평온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떠올리며 손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색을 고르는 것, 물감을 짜는 것, 붓을 고르는 것, 캔버스 위에 칠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그림을 망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실패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다. 지금 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Backspace키로 지우는 것처럼 그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어서 그리면 된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고작 그림인데! 망치면 또 어떤가? 고작 그림인데!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던 것일까?


망설임이 사라지자 아주 만족스러운 그림이 완성되었다. 나의 첫 그림. 나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바다와 정글 색 배경에 파드마 아사나(연꽃 자세)를 그렸다. 그간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정말 평온했다. 요가 수련을 하는 것처럼 아주 마음이 편했다. 잡생각을 떨쳐내고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을 해결하는 것처럼, 그림도 그러했다. 종종 글이 아닌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 같다. 빈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글이나 그림이나 똑같은 것이었다.


파드마 아사나(연꽃 자세) @혜룡

내가 그림을 그린 곳은 이태원 어느 골목에 위치한 드로잉 카페이다. 나처럼 새하얀 캔버스에 어려움이 있다면, 밑그림이 그려진 도안 위에 색을 칠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작업한 것처럼 캔버스에 그릴 수도 있고, 에코백에도 그릴 수 있다. 혼자 하는 체험에서 조금 욕심이 있다면 작가 선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정규 클래스도 있다고 한다.


<그림집 드로잉 카페>

그림집 그림 영상(YouTube)

그림집 소개 및 이용 방법


도안 위에 그리기 @그림집
이태원에 위치한 드로잉 카페 @그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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