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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Apr 29. 2021

서른살 회고하기

서른살이 되었다.


작년 생일에 계란 한 판을 선물 받았다. 스무 살이 되었던 성인식에서 받았던 장미 그리고 향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스무 살에는 축하를 받았다면 서른은 뭔가 놀림을 받는 것에 가까웠다. 이제 먹을 만큼 먹은 나이니까 철없이 행동하지 말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압박도 느껴졌다.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나이 하나가 뭐 대수라고. 고작 365일 차이인데? 갑자기 1년 사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나? 열아홉에서 스물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미성년자와 성인은 엄청난 변화다. 권한과 자유가 생긴다. 뭐든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스물 아홉에서 서른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무엇이 이토록 나를 압박하는 것일까? 활짝 열린 닭장 문 밖을 나왔지만, 근처에서 방황하다 밥때가 되면 다시 닭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꼭 지금 내 모습 같다.


2021년. 나는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한국에서는 태어난 순간부터 1살을 먹고 시작한다). 햇수로는 29년의 시간을 살았다.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너 이제 서른이니까 정신 차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계란 한 판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 할 것 같았다.


10대에는 ‘대학’만 노려보며 쉼 없이 달렸고, 20대에는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 이일 저일 도전하는 방랑자 같은 삶을 살았다. 30대에는 그중에 나에게 맞는 한 가지 영역을 찾아 커리어를 쌓고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서른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목적지도 사라졌고, 방향도 모르겠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이 배는 출렁이는 파도에 뒤집히기 딱 좋게 생겼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신나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딜 향해 달려가는지 몰라서 그대로 멈춰버릴 때가 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진로 고민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다시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회초년생을 졸업할 나이에도 하고 있다. 갑자기 내가 하는 일이 싫어지고, 그러면서 회사도 관두고 싶어진다. 이 시기에는 사직서를 적어두고 이직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직하면 정말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일까?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지금 하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뭘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일까?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할 수 있는 것인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나 이런 사람이고 이런 걸 하고 싶으니까 좋은 곳 있으면 추천을 해달라고도 하지. 세상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는걸!


한때 내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던 발레를 관두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했던 방법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모든 일을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이겠지 싶었다. 새로운 직함과 역할을 부여받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나갔다. 새로운 조직과 일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미션을 클리어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안정기에 접어들면 유지보수를 하듯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흥미를 잃었다. 전공을 관두어도, 회사를 퇴사해도, 직무를 바꾸고 새로운 조직에 합류해도 쳇바퀴처럼 돌고 돌아서 결국엔 다시 원점이 되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지겹게 들었던,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요하게 물었던 질문. 나는 여전히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답해야 하지 않을까?


그간 살아온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끝내고 회고를 하듯, 지금 내 인생에도 회고가 필요하다.


-서른살 회고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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