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워킹홀리데이 EP.1
청년취업이 어렵다는 말. 쳥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 정부는 각 기관마다 청년고용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찾도록 하였고, 실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영수 같은 수능 준비만을 위한 입시교육을 하더니, 결국 대학에 보내서는 아이들의 취업문제까지 엉망으로 만들 셈인가?
오로지 대학을 위해 학교에서 야자까지 하면서 공부를 한다. 어려운 수학문제와 언어, 과학, 사회... 예체능 시간에도 자습이다. 컴퓨터와 같은 능력을 갖추고 대학에 와서는 사회생활을 열심히 배운다. 교수님 아래에서 살아남는 법, 뇌물을 사용하는 법, 인맥을 통해 살아남는 법.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취업을 하려는데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급여는 왜 이렇게 조금 주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 꼬라지.
간혹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어릴 적 부터 예술에 쏟아부었다. 무용, 피아노, 미술, 논술, 수영, 영어학원... 그 중에서 내가 택한 것은 무용(발레)였다. 공부는 정말 흥미가 없었지만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은 나의 즐거움 이었다. 허나, 그것이 전공이 되면 괴롭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 만큼 나도 똑같이 성적을 냈어야 하고, 추가로 친구들이 과외를 하러 갈 때 나는 학원에서 춤을 배운다. '차라리 공부에만 몰두 했다면..'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는 '성적'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성적 숫자는 어디서나 '나'라는 사람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 무용도 마찬가지다. 어느 유명한 콩쿨 대회에서 몇 등을 하느냐가 '나'라는 사람의 무용 실력을 증명한다. 그게 왜 중요하지? 마치 성능을 테스트 받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돈과 시간 그리고 스트레스를 쏟아 부어서 겨우겨우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서는 실기가 아니라 어떠한 지식이나 능력을 습득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바르게 자라서는 결국엔 바보같은 컴퓨터가 되어버린다. 나는 '욱'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욱' 하고 바른생활어린이 를 탈출했다. 교과서에 적힌 대로 착한 일만, 시키는 일만 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책을 찢고 밖으로 나와서 하고 싶은 대로 했더니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아가게 되었다. 도중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1학년 2학기 성적은 올 F다. 신기하게도 교양 중에는 C라는 성적도 있다. 왜일까? 중간고사 이후로 학교를 가지도 않았는데 성적이 나온 것이 참 신기했지만, 무튼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휴학계를 던져서 사회로 뛰어들었다. 돈들여서 열심히 공부시키고 좋은 대학을 보내두었더니 어디서 몸고생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부모님은 속상해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았다. 인생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었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나'라는 사람을 위한 투자가 시작되었다.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친구들이랑 해외로 배낭여행도 다녔고, 점점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났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했지만 정말 관심 없는데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이수'만을 위해서 움직였다.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를 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졸업반이 되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남들 대기업을 쳐다볼 때, 나도 재단을 쳐다보았다. 안정적인 수입과 프리랜서 보다도 많이 받을 것 같은 높은 급여. 그러나 직업으로 하기엔 일이 힘들 것이고 그러면 급여는 높은 수준도 아니다. 또 내 인맥과 능력치로는 인턴 발끝도 내밀지 못할 곳. 그 아래 다른 곳들은 급여도 낮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부서가 있나 싶었다.(예술계열도 관련된 많은 기관과 부서가 있다.) 주변 대학친구들은 아예 다른 쪽으로 공부해서 취직을 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공대생들은 확고한 취업 루트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유학을 가버렸다. 막막했다. 나는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데,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고 설령 입사해도 턱 없이 작아 보이는 급여는 차라리 나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만들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우리를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아이디어나 능력을 저렴간 값에 가져가려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돈들여 열심히 20년을 배웠는데 나는 뭘 하며 살아온 것인지 한심해보였다.
나는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 능력들로 어떠한 일을 하기엔 경험치가 너무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배낭을 둘러메고 세계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그렇게 대책 없는 여행은 나에게 잠시 휴식을 줄 뿐, 실직적인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미 지천에 널린 서울의 재단들. 어느 기업에 가던 포진되어진 무용계 인맥. 이 곳에서 나가고 싶다. 그렇게 지역으로 지역으로 알아보다가 해외까지도 알아보았지만, 부족한 영어실력과 이제 막 인사를 주고 받을 정도의 스페인어는 내가 어디서 사기 당해 굶어죽기 딱 좋았다. 너무도 우연히 제주도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라는 곳이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미 서울에 있었고, '문화창조융합센터'라던가 이런 기관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들 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신설된 곳이지만 평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주는 무언가 달라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를 넣었고 면접까지 보고 왔다. 면접을 보러 간 순간 '이곳이다' 싶었다. 주변에선 엄청 말렸지만 나는 이미 제주센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제주워킹홀리데이'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