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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룡 Feb 14. 2017

예상치 못한 일정의 즐거움

트라브존에 갇히다?!

#1. 예상 밖의 루트


  사프란 볼루에서 야간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넓고 편안했다. 돌무쉬에서 내 뒤에 앉아있던 내 또래의 남자아이는 손님이 아니라 버스 직원이었다. 보통은 사프란볼루에서 트라브존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한다고 했다. 우리처럼 장시간에 걸쳐 버스로 이동하는 여행자, 터키인은 드물었다. 옆에 앉은 터키 남자들은 동료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노트북과 각종 전자기기를 꺼내서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업무상 출장을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휴게소에서 사온 간식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며 무어라고 말을 걸었는데,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소년직원과 그 일행은 음료와 간식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동네 친구처럼 떠들고 우리와도 끊임 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영어가 아니라 터키어로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고 웃음만 지었다. 내 동생은 귀찮다는 듯이 몸을 틀어서 잠을 자버렸다.


  야간버스 이동에 매우 지쳤다. 한참을 달려서 날이 밝았고, 소년이 우리를 깨웠다. 버스로 이동 할 때마다 놀라운 사실은 안내 방송도 없는데 다들 어쩜 그렇게 내릴 곳을 정확히 알고 내리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직원은 승객들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다 외우고 다니는 건지, 찾아와 내릴 곳을 알려주고 깨워준다. 


  14시간을 달려 도착한 트라브존. 공기가 매우 쌀쌀하다. 1월의 터키는 낮에는 봄과 같고 밤에는 쌀살한 가을 같다. 사프란볼루 보다는 트라브존이 훨씬 더 큰 도시처럼 느껴졌다. 버스터미널도 넓어서 직원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돌무쉬 타는 곳을 알아냈다. 돌무쉬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회사가 모여 있을 때 카파도키아로 향하는 버스티켓을 미리 예약하려고 했다. 그런데 예정했던 날짜에는 티켓이 없었다.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였다. 말로는 터키 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해서 단체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리가 없다는 것 같은데.. 맙소사!


  트라브존에서 괴레메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4일 후에 가는 오후 버스가 있다고 한다. 우선 그 좌석이라도 예약을 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트라브존은 단지 쉬멜라 수도원과 흑해를 보기 위해 들른 곳이었다. 심지어 괴레메에 예약한 숙소와 패키지 투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었다. 이른 아침 도착한 트라브존은 나에게 멘붕을 안겨 주었고 메이단 공원을 가로질러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상점들 앞에서 숙소 방향을 찾아 서성이고 있었다.


  레스토랑 직원이 문을 열고 나와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숙소로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참 감사했다. 


#2. Elif Otel 


  일찍 도착한 숙소. 이 건물 주변으로 가이드북에서 봤던 숙소들이 널렸지만, 우리 숙소 건물이 가장 깨끗해 보였다. 주변 숙소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더블룸 40유로) 예약을 했으니, 좋을 수 밖에.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게 되었으니 조금 할인을 해볼까 하여 직원에게 어렵게  영어로 우리의 사정을 말했다. 다행히 비수기라 며칠 더 머무르는 것에 대해서 매우 좋아했다. 직원에게 전화를 얻어 트래블러스에 전화했다. (우리가 예약한 카파도키아 숙소) 영어로 버스에 문제가 생겨 일정을 변경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로비에 앉아 아이패드를 꺼내들고 이메일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메일을 보내면 한국어로 답장이 잘 온다. 답장은 매우 금방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약 일정을 변경 해주었고 가격도 조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인 것은 우리가 가는 1박 2일동안 날씨가 좋아야 벌룬투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신이 우릴 돕기를...


#3. 쉬멜라 수두원 투어


  숙소도 해결되었고,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체크인 시간이 되어 룸으로 올라갔다. 예상보다 좋은 방에 놀라웠다. 과연 비용은 많이 지불하니 좋긴 좋구나 싶었다. 찝찝한 몸을 씻고 내려오니 친절하게 아침을 권했다. 이스탄불의 아펙스 호텔만큼 좋은 조식은 아니었지만, 배가 고프니 뭐라도 우겨 넣었다. 앞으로 이 긴 시간동안 무얼 해야 할까.. 숙소를 나와서 버스회사로 들어가 쉬멜라 수도원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의 요금은 30리라였고, 10시부터 15시까지 진행된다고 했다. 10시에 돌무쉬를 타고 이동하는데, 여러 버스회사와 호텔을 거쳐서 예약받은 손님을 모두 태우고서야 수도원을 향해 달렸다. 피곤했던 우리는 정신없이 졸았다. 같이 투어를 하게 된 일행들은 대부분이 신혼여행으로 온 관광객들 이었다. 미국, 두바이 등등. 우연히 한국 여성분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아주 가벼운 짐으로 말이다. 트라브존에서 한국인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반가워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생각보다 수도원은 매우 작았고, 온통 터키어로 된 설명 뿐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한 식당에 들렀는데 이곳 음식이 매우 환상적이었다.  


#4. Kubra(쿠브라)를 만나다.


  쉬멜라 투어 이후 우리는 곧장 숙소 근처 슈퍼에서 과일을 사 먹었다. 이곳 과일들은 전부 달고 맛있었다. 특히 터키 귤은 최고로 맛있었다. 항상 그렇듯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면서 터키 유저들의 좋아요를 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Kubra' 라는 유저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복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이라고 소개하며 나와 만나기를 청하였다. 다소 어눌한 한국어로 만남을 요청해서 나는 무척 경계했었다. 이스탄불에서도 한국어와 영어로 대화 하기를 요청한 남자들이 많았고 택시기사에게 요금 사기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경계심이 한껏 높았기 때문에 아무리 여성이 말을 걸어도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아이디를 검색해서 조사를 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한복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 친구들을 만나 적었던 글들이 있었다. 나는 트라브존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앞으로 무얼 해야할 지 몰랐던 터여서 kubra를 만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왔고, 조식을 먹은 후에 메이단 공원을 걸었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나는 우체국에 엽서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부랴부랴 걸어가던 중, 터키 여자 두 명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더니,

"혹시 한국 사람 이세요?"

라며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 터키 사람인데 나에게 한국어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다니!

"네 맞아요!"

우리는 영어도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신나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소녀들의 한국어 실력은 매우 훌륭했다. '사랑'과 '하잘(낙엽)'이라고 소개한 그녀들은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나보다도 더 잘 챙겨보고 배우들의 이름과 노래들을 전부 외우는 똑똑한 소녀들이었다. 심지어 노래도 매우 잘 불렀다. 둘이 있을 때에는 영어로만 대화를 하고, 한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에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녀들은 19세의 소녀들이었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무척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그녀들의 도움으로 kubra와 연락을 했고 만날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었다. 터키의 남자들은 다정하지만 때로는 못된 장난을 치기 때문에 외국인 여성들만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한참을 그녀들과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 kubra와 만날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트라브존에서 가장 인기있는 맛집들을 다녔고, 그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복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에서 한복 디자이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오면 내가 꼭 도와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나와 같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녀를 따라서 트라브존의 아름다운 곳들을 다닐 수 있었다. 칼레 공원-보즈테페 등을 말이다. 확실히 현지인과 다니니 언어 문제도 해결되었고 외국인은 꿈도 못 꾸었을 길들과 플레이스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어느 가이드북이나 리뷰에서도 볼 수 없는 곳들을 말이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앞으로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엇는데 그녀는 우리에게 '우준괼' 마을을 추천했다. 예정에도 없던 근교여행!


  여름에 가야 훨씬 아름답다고 하지만, 겨울에 꽁꽁 언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일반 버스회사에서 투어로 예약을 하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느 루트로 예약 하기로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어느 뒷골목에 위치한 버스 회사에 안내 해주었다. 능숙한 터키어로 왕복 버스권을 예약하고, 우리가 터키어를 잘 못하니 잘 부탁한다고 부탁도 해주었다. 우리가 지나간 버스회사가 있는 골목길은 일반 시장길 처럼 보이지만, 식장도 지저분하고 밤에는 여자들을 납치해 모텔로 데려가 성매매를 시키기도 한다는 무서운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녁에는 절대로 이 길을 다니지 않기로 했다. kubra는 터키어로 메모를 몇 가지 해주면서 우리에게 한국어로 설명 해주었다. 위급한 상황때 현지인에게 보여주면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5. 우준괼

 

  오전 10시에 우준괼로 향하는 큰 버스를 탔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는 길 풍경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우리 바로 뒤에 앉은 터키 여대생들을 우리에게 영어로 인사를 했다. 영어를 듣는 순간 너무도 반가웠다. 그녀들은 이것저것 친절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우준괼에 도착하자 한가득 쌓인 눈과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보였다. 바람이 굉장해서 서둘러서 식당에 들어갔다. kubra가 추천한 식당에서 요리를 먹고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kubra가 꼭 가보라는 폭포가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 식당 주인 말로는 걸어서 10분?20분? 이면 된다고 한 것 같은데 30분 넘도록 우리는 그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굉장히 비싸 보이는 리조트 같은 곳들만 잔뜩 보였다. 낮에 이곳은 피서객들이 놀러와 쉬는 곳인듯 하였다. 그렇게 나와 동생이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제일 비싸보이는 리조트 벤치에서 담배를 피던 흑인 남자가 어디 가냐며 말을 걸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석유부자 같았다. 걸친 패션은 힙합 가수 느낌인데 돈이 무척 많은 사람 같았다. 과도한 친절로 프론트에 들어가서 폭포의 위치를 물어봐 주었고, 심지어 자기 차로 태워다 준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단지 우리의 힘으로 걸어가고 싶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우리는 폭포를 찾지 못했다. 아니면 이미 꽁꽁 얼어서 폭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6. 벌써 이곳의 마지막.


  1박으로 쉬멜라 수도원만 보고 나오려던 나의 계획은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5일이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고 많은 일들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가 밖에서 놀다가 늦게 호텔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하고 퇴근하지 못했던 엘리프 호텔의 사장 할아버지. sns를 통해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터키에서의 일정을 보람차게 만들어 준 kubra.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잘. 마지막날 우리는 그 소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녀들은 우리에게 깜짝 선물을 주었다. 아주 예쁜 터키쉬커피잔 세트와 커피가루! 나는 커피를 매우 좋아해서 이 선물에 너무 감사했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꼭 좋은 선문들을 보내주리라!


  헤어짐이 아쉬워 버스타는 곳 앞에서 함께 돌무쉬를 기다려 주었다. 버스회사 직원들은 우리에게 참 진절하지 않아서 사랑과 하잘이 직접 이야기 해서 버스표도 꼼꼼히 확인해 주었고, 돌무쉬가 언제 오는지도 알아봐 주었다. 돌무쉬를 기다리는데 막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돌무쉬에서 동양인 남자가 내렸다. 그냥 일본여행객 이려니~ 싶었는데 사랑이 먼저 그가 한국인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한국 남자였다. 그의 영어이름은 잭 이었다. 그도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고 괴레메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사랑이 표를 들여다 보니 괴레메로 가는 표가 아닌 듯 했는지 표를 들고 버스회사에 들어가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알고보니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엉뚱한 곳의 티켓을 받은 것이었다. 하마터면 잭은 이상한 곳에 갈 뻔 했다. 사랑과 하잘의 도움으로 무사히 괴레메 버스를 탔다. 잭도 우리 바로 뒷 자리였다. 이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그와 카파도키아-안탈리아-보드룸까지 함께 이동하거나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이 날을 계기로 나의 여행은 완전히 바뀌었다. 가이드 북 따위는  캐리어에 쑤셔박았고 적극적으로 현지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숙소나 버스의 예약은 그때그때 하였고 한국에 와서도 그들과 sns를 통해 교류했다. 서로를 응원했고 kubra는 한복디자이너가 되어 터키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패션쇼도 진행했다. 유명인이 되었다. 내가 졸업을 앞두던 때에 kubra와 한국에서 만나 함께 돌아다녔다. 그녀가 트라브존에서 나에게 해 준 것 처럼 말이다. 사랑과 하잘은 터키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대)의 언어학과에 입학했다. 역시 똑순이들!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터키를 잊을 수 없었다. 그들 덕분이다. 다시 또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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