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 3일차 이야기
창밖에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벌써 아침인가? 놀라서 시계를 봤는데 아직 새벽 4시. 유럽에서는 익숙한 어둠이 없는 밤. 시간 개념이 사라지는 아침이다. 그나마 새벽이 시원해서 산책 하기엔 좋다. 전에 이탈리아를 돌아다닐 적에도 새벽에 돌아다니고, 실내에서 식사를 했고, 낮에는 무조건 실내에서 보내다가 해가 질 즈음 다시 돌아다니는 패턴을 했었다. 한 낮 해가 쨍쨍이는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일사병에 걸리거나 정말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튼, 오늘은 비엔나로 가는 일정이었다. 호텔의 조식은 터키식과 흡사했다. 빵과 올리브, 각종 버터와 잼, 슬라이스 치즈들과 햄들. 계란찜 같은 것과 과일. 신선하진 않아 보이지만 오이와 토마토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그런 조식이다. 그래도 호텔이 좋아서 조식은 참 잘 나오는 편 이었다. 서유럽에선 상상할 수 없는, 그리고 터키보다 훌륭한 아침이다. 일행분들 중에는 이런 아침이 입에 맞지 않아서 챙겨온 김과 밥과 김치 등을 꺼내서 드시는 분들도 계셨다. 우리집은 딱히 음식 가리는 사람이 없어서 잘 먹었다. 아버지는 원래 빵을 좋아하셔서 참 많이 드셨더랬다. 욕심쟁이.....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후, 짐을 싸서 오전 7시 반에 버스를 타고 비엔나로 이동하는 길.
아침을 먹자마자 버스에서 이동하는 동안 오전시간을 모두 소진하게 될 일정. 이상하게 버스만 타면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그렇게 꾸벅꾸벅 조는 나를 어머니가 깨우셨다. 창밖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함께 보자시면서.
막힘 없이 펼쳐진 뷰, 아기자기한 집, 창 마다 예쁜 꽃들이 걸려 있었다. 국경을 넘어 가는 길인데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도 모를 만큼 구분이 없었다. 핸드폰에서 울리는 메시지 알람으로 우리가 국경을 넘었구나 하며 알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창 밖에 보이는 풀과 나무와 작물들이 참 궁금하셨다. 저게 뭘까? 하면서 계속 보게 되었다. 이름 맞추기 게임도 진행되었고 노후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재미난 주제가 되었다.
중간에 우리는 휴게소에서 쉬어야 했다. 버스기사의 휴식 시간도 있어야 했고, 우리도 화장실이 필요했다. 휴게소 라기보다 월미도가 생각나는 작은 테마파크가 있었다. 신나게 젤라또를 먹으면서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셨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고속도로 같은 곳인데, 어쩜 이리도 멋짐이 가득할까? 비엔나로 가는 길 마저 이렇게 아름답다니! 비엔나가 너무 기다려졌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비엔나의 식당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모두들 허겁지겁 식당 안으로 가야만 했다. 빨리 먹어야 예약된 시간에 쉔부른 궁전에 들어가 투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도 비엔나 현지 가이드가 따로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였는데, 범상치 않았다. 식당 앞에서 머리~발끝까지 무장한 한국분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미소로 우리들을 안내하는데 어머니와 나는 같은 생각으로 속삭였다. '선수다.'
이 더운 날, 왕눈이 같은 선글라스에 두꺼운 퍼를 두르고 (캐시미어 같은 퍼를 두르고 계셨다.) 통굽 샌들에 미술관에서 파는 양산까지... 우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몸에 두른 것들이 이따 쇼핑관에서 판매될 것. 그래서 이 더위에도 저렇게 두르고 들고 다니는 것 이라고 말이다.
점심메뉴는 여행사에서 홍보했던 4대 특식 중에서 '호이리게 정식'이었다.
점심을 먹는데 한국인 입맛엔 좀 많이 짠 고기들이 있었다. 그나마 감자가 맛있었다. 다들 감자만 참 열심히 먹었다. 나도 육식파라 탄수화물 잘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고기가 싫었다. 열심히 감자를 먹게 되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이곳은 감자가 유명 하다고 했다.) 또 그렇게 급하게 식사를 하고 궁전에 들어서는데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솔직하게 나는 궁전 안에도 관심이 없고 작품에도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고 이곳의 정원이 포토존이라 우선을 가이드를 잘 따라 다니기로 했다. 궁전 일정이 끝나면 내가 기다리는 빈의 시내관광을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비엔나 커피를 반드시 마시리라! 일정에는 오페라 극장이건 무슨 거리건 적혀 있었지만, 나는 가이드에게 말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빈 시내에서 유명한 커피숍과 메뉴 리스트를 쫙 들고 있었던 터라 궁전 투어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릴 뿐.
궁전에 들어서서 아름다운 양식과 엘리자베스의 일화를 열심히 들었다. 송신기를 통해 가이드의 설명을 참 열심히 듣고 다녔는데 우리들 귓속에 남은 말은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미모(동안)의 비결은 캐비어 입니다." 말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궁전을 나오며 어머니와 나는 또 생각했다. '쇼핑관에 캐비어크림이 있겠구만.' 그렇게 궁전 내부를 둘러보고 정신없이 정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참 예뻤는데 우리는 뷰 포인트에 가야 해서 가이드를 따라 또 열심히 뛰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정원이 한 눈에 보이는 뷰 포인트에서 우리들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가족 단체사진을 찍으려면 누군가가 찍어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기다려야 했다.
무시무시하게 넓은 곳이었다. 이 곳에서 분명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둘러보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15분 후에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게 자유시간이자 곧 돌아가는 이동 시간. 속상하게 아버지는 일행들을 따라서 뒤도 돌아보지않고 걸어가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계속 소리쳐 불렀다.
"우리 여기서 잠깐이라도 사진 찍고 가면 안되요? 그렇게 가이드를 따라 가다간 우린 하나도 보지 못해요."
우리가 이렇게 사진 찍고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는 동안, 다른 일행들은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에릭남이 아버지와 와서 찍은 포인트라나..? 그들이 거기서 찍었는데, 왜 우리도 따라서 찍어야 하지? 싶어서 나는 따로 궁전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가 합류했다. 다행히 일행들은 사진을 찍다가 막 모였고 버스도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합시다."
그렇게 차를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말했다. 아까 궁전에 오면서 열심히 뽐뿌했던 키스 그림투어 신청자 손 들어달라며 말이다.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갑자기 키스그림을 보러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새로운 투어를 제안했었다. 본래 사진 촬영도 안되는데 최근에 개방되어 사진촬영도 된다고 했다. 원래의 투어비에 10유로를 할인 하겠다며, 이 투어비는 시내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야 하므로 기사에게 이동료도 주어야 하고 본인 가이드료에 입장료가 포함된다고 했다. 그런데 최소인원 15명을 채워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니 지금 일정만 보더래도 시내구경할 시간도 부족해 보이는데, 갑자기 무슨 투어? 그림? 궁전? 이제 궁전이고 나발이고 지긋지긋했다. 무튼, 그랬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손을 들어 인원을 세는데 4명? 밖에 손을 들지 않았다. 그렇지..사람들이 뭐, 좋아하겠어? 어르신들도 계시고 말이야.. 아무도 예술에는 관심이 없다고.. 그런데 손을 든 일행들이 그 그림 유명해서 보면 참 좋은데~ 이러면서 술렁거렸다. 가이드가 한번 더 손을 들게 했고, 그래도 수가 적자 15명이 채워질 때까지 손들기를 시킬 목적인지 계속 뽐뿌질 하면서 손들기를 유도했다. 어거지로 마지못해 15명이 채워졌고, 투어를 원치 않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동해야 했다. 나는 그 순간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꾸욱 참았다.
그놈의 벨베데레 궁전에 내리기 무섭게 그녀(현지가이드)는 일행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투어를 희망하지 않았던 우리가족 포함 다른 일행들 그리고 인솔해 주시는 가이드님은 근처 카페를 찾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저도 그림같은 건 관심이 없어요. 우리 그냥 여기서 커피나 한잔 해요. 비엔나 커피 유명하잖아요." 라며 말이다.
나이는 한 50도 넘어보이는 가이드님이 다람쥐처럼 날아다니며 궁전 바로 밖에있는 커피숍을 찾아주셨다. 나가기 무섭게 펼쳐진 모습은 나에게 큰 감동이 되었다. 아니, 그냥 길인데 이렇게 예뻐도 되는건가?
거리 풍경에 심취.
그러나 뜨거운 날씨 때문에 비엔나 커피를 주문할 용기가 없었다. 그냥 아이스라떼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시원하게 한 모금 했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나는 너무 놀라워서 당장 카페 안에 들어가 주인을 찾아 물었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요. 나는 한국에서 왔고, 커피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곳 커피 너무 맛있는데 어떤 원두를 사용하고 어떻게 내려지죠?" 그러자 친절하게 그는 나에게 원두 머신기도 보여주었고 원두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비엔나의 매장용 원두라서 일반적인 구입은 힘들고, 대신 큰 마트 이름을 알려주고 원두 브랜드를 알려주었다. 일반 가정에서는 그렇게 사서 먹는다며 말이다. 익숙한 브랜드다. 과연, 이 맛이 집에서도 날까? 마트를 가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방문할 시간이 없어 아쉽지만 메모만 간직한 채 버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키스그림 투어는 약 한시간 정도. 우리의 한 시간이 날아갔다. 어머니는 차라리 잠깐 쉴 수 있어서 괜찮았다고 하셨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 했다. 부들부들.
그리고 드디어 시내로 들어왔다!
근데, 사진 속 내 모습이 왜 저렇게 뚱 하냐고? 부들부들.
거리에 도착하기 무섭게 가이드는 우리에게 현지인들이 돌아보는 골목길 이라며 데리고 들어갔다.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명동에 가면 가이드를 따라서 열심히 걸어다니는 단체 외국인들을 만나잖아? 그런데 그들은 참, 현지인도 잘 안가는 이상한 길을 다니며 설명도 듣고 쇼핑을 하게 되지. 마치 그 모습이 비엔나에서 펼쳐지는 것 처럼...
불길한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따라가니 모차르트생가 앞에 도착했다. 오, 이제 자유시간 주려나?하는데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주고는 성악을 전공한 그녀(현지 가이드)는 오페라 한 곡을 멋지게 불러주었다. 그리고 쌩 하니 골목길 끝에 있는 쇼핑점에 들어갔다. ... 아, 우리에겐 쇼핑의 시간이 있어야 했지... 아...
안에는 역시나, 그녀가 흔드는 키스그림 양산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녀가 "아까 보신 키이~스 그림 그려진 양산, 여기있있어요~" 그녀가 하루종일 들고 다닌 그 양산. 그림투어 다녀온 어머님들은 양산을 하나씩 잡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번에는 "제가 두른 이것은 여기에 있어요~ 이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는거죠? 우리나라 백화점에선 훨씬 비싸요." 하니까 어머님들이 또 그쪽에 우글우글 몰렸다. 정신없이 마음에 드는 스카프 고르듯 고르기 시작했다. 또 한쪽 구석에선 쌍둥이칼 브랜드의 다양한 물품들이 가득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캐비어 크림도 있었고, 아주 오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것들은 상품화 되어서 진열되 있었다. 사실, 가격이 엄청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 보다는 싸겠지. 그런데, 딱히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홀린 것처럼 물건을 사고,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며 폭풍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쇼핑에 1도 관심없는 진정한 여행러들은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쇼핑을 마치고 나오길 기다렸다. 아주 한참동안 말이다. 심심했다.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조금만 이 골목을 나서면 시내인데...
그렇게 30분 넘게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시내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 이제 시내구경을 하는거야!! 그렇게 열심히 갔는데, 성당 앞에서 그녀(가이드)가 말했다. 성당 앞에서들 가셔서 사진 찍으시고, 주변도 보고 오시구요. 10분 후에 성당 앞에 모일께요.
왜? 10분? 10분 후엔 자유시간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일행들이 우리의 인솔가이드님께 여쭈었다.
"자유롭게 시내 둘러보고 몇 시까지 모이면 되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10분 뒤에 식사를 하러 이동한다는 말..이었다..먼~~~~ 곳으로..
순간, 내 목소리는 분노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아니, 그럼 시내 구경은 이게 끝이에요?? 시내 자유 구경 없어요? 오늘 일정 이게 다에요?"
벙쪘다. 아버지도 약간 화난 목소리로, 성당 앞에서 사진이나 찍자. 자, 사진 찍어. 라며 나에게 성을 내셨다. 나는 지금 사진을 찍을 기분이 아니었다. 분노로 가득 찬 내 표정은 이 길 한복판에서 투어회사와 욕을 하며 싸우지 않은 것으로 다행이었다. 참아내기 바쁜 상태였다. 그렇게 씩씩거리는데, 뒤에서 그녀가 인솔가이드님과 꿍냥꿍냥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다른 일행들도 시내구경을 못 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한마디씩 던졌다. 그녀는 "어머~ 그러게요, 단체관광은 시간이 생명인데~ 중간에 버스기사가 자꾸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우리들의 자유 시간이 다 없어졌네요~" 라는 식으로 계속 버스기사 탓을 했다. 중간에 버스기사가 길을 다르게 간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한 20분 돌아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놈의 키스그림 투어로 날린 시간과 망할놈의 쇼핑시간으로 보낸 시간만 보상되어도 우리는 충분히 여유롭게 시내를 볼 수 있었다.
이런 큰 여행사들은 저렴하게 상품을 판매하는 대신에 사이드로 진행되는 투어와 쇼핑몰에서 판매 액수 중 일부를 가이드 및 여행사의 수익으로 가져가는 구조이다. 그래서 욕심있는 현지 가이드들은 본인의 수익을 위해 사람들에게 투어를 유도하고, 쇼핑을 유도한다. 오늘 아주 제대로 장사꾼에게 걸린 셈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대놓고 성을 내었다. 그것도..아버지에게.. 내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얼굴 펴라고 하셨는데,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고 우리 가족에게 짜증을 냈던 것이다.
"아니, 일정에도 없던 투어를 가질 않나. 이게 뭐야! 빈에 와서 빈에 대해 뭘 본건데? 성당? 지금 저 성당사진이 중요해요? 저게 뭔데!! 심지어 옆엔 공사판이잖아! 내가 생각한 여행은 이런게 아니었어요! 다 내 잘못이지. 내가 편하자고 나름대로 큰 여행사라 예약했는데, 여행은 개뿔! 그냥 이럴꺼면 자유여행 모시고 왔지! 큰소리 쳐서 죄송한데, 그냥 저 혼자 짜증이 나서 표정이 안좋았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저 지금 사진 찍어드릴 기분은 못 되는 것 같아요. 미안한데 동생이 좀 부모님 사진 찍어드려."
그 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나는 뒤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와 인솔가이드님의 말에도 한마디 대꾸 없었다. 부모님이 하는 말씀에도, 그 누군가가 던지는 농담에도 죽일 듯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말이다. 나는 너무 속상했다. 부모님을 위한 여행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 다 내 잘못 된 선택이었다.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 조차도 죄송스러웠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 없었다. 저녁은 예정된 한식당에서 했는데, 매우매우매우 별로인 저녁이었다. 다들 허기져서 열심히 드시긴 했다. 그나마 국물과 밥이니 이 정도도 감사하게 먹어야지.. 숙소에 와서도 나는 기분이 우울했다. 이제 고작 이곳에서 이틀이 지났는데, 나머지 여행도 이런 식이면 어쩌지? 속상해서 울어버렸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 오늘,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그것을 하자. 그것을 위해 왔잖아?"
맞다. 이 여행의 목적은, 아버지 환갑을 맞이하여 가족들이 3년동안 적금을 들어서 모은 경비로 왔다. 아버지 몰래 감사패도 준비해서 캐리어에 꽁꽁숨겨 가져오지 않았던가!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 1층에 준비된 레스토랑에서 (주변은 이미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매우 구석진 시골같은 마을이었고 불량한 사람들이 거리에 돌아다녀서 나갈 수 없었다.) 와인과 정체불명 음식을 시켜서 조촐하지만 아버지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모든 메뉴판이 독일어로 적혀서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렸지만, 실패.. 이상한 요리들이 나왔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네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서 여행도 하고, 식사도 하는,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고 나와 동생은 학업으로 온 식구가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었을 적에는 대학에 살다시피 했었고(나는 발레를 동생은 미술을 해서 학교에 살았다),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하시기 때문에 생활패턴이 달라서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우리가족은 혼자 지내는 느낌이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무섭게 제주도에 취직이 되어서 내려갔고, 동생도 대학 근처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은 더욱 텅 비었다. 명절이나 되어야 간간히 온 식구가 서울집에 모이게 되었다. 부모님은 많이 외로워하셨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여행을 하고, 하루종일 함께하고, 마주보며 식사를 하고, 아버지의 60번째 생신을 축하할 수 있어 좋았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함께 한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일정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 내일부터는 크로아티아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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