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룡 May 02. 2016

파도를 타고 가파도

가파도 휴식 이야기

간만에 마주하는 휴일이다. 제주에 내려와서도 취미를 잊은 채 모니터와 전화기를 붙들고 보내던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쉬고자 하는 휴일이다. 4월 체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들었던 사람들과 가파도 여행을 떠나고자 이른 아침 일어나 채비를 서둘렀다. 휴일이지만 제주관광객 코스프레 이므로 피로함도 잊은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함께 여행할 사람들은 버스킹TV의 남궁요 대표님, 마이리얼트립의 곽영준님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해외 배낭여행객 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이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최근 마이리얼트립은 제주에 국내프로그램 도입을 런칭했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써는 4월 체류지원에 마이리얼트립이 있다는 것에 반갑고도 기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영준님이랑 더 가깝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멤버는 기존에 제주동부 프로그램을 함께 체험한 경험이 있다. 확실히 여행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다. 버스킹TV의 남궁요 대표님은 워낙 활동적이고 노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특히나 공연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시기 때문에 나랑도 잘 소통이 되는 것 같았다. 진지한 클래식 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부분에서 편안하게 친목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이리얼트립의 뚜뚜버스를 타고 모슬포항으로 달렸다. 다행히 날씨가 굉장히 좋다. 변덕스런 제주에서 오늘처럼 섬이 허락한 날씨는 무조건 즐기라는 뜻. 휴일이라 사람이 많을 것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처럼의 힐링을 하기 위해 가파도행 배를 탔다. 이른 아침임에도 매표소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아슬하게 9시 출발하는 배를 타고 가파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굉장히 작은 섬. 주민들의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했다. 


 


섬 입구에서 80년동안 단 한번도 섬을 나가지 않았던 할머니께서 가이드처럼 안내를 해주신다. 정말 매력적인 어필이다. 섬을 나가지 않은 할머니의 섬 이야기라니!!! 관광 상품으로 진행한다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가이드 경력인 셈이다. 섬은 청보리로 초록빛을 피어내고 있었다. 곧장 샛길로 빠져서 확 트인 전경을 바라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20년 넘게 서울 도심에서만 살던 나는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에 익숙했고, 자연을 찾아 내려온 제주에서도 회사들로 밀집한 시내에서 컴퓨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만에 막힘없이 뚫린 풍경을 보고 있자니 뿌옇던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듯 했다. 적당히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가파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허수아비가 눈에 띈다. 무서운 얼굴에 한복을 입고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지만, 마치 안내를 하는 것 같고 춤을 추는 것 같은 포즈로 서 있다. 옆에 나란히 서서 나도 허수아비를 흉내내었다. 잘 추지도 못하는 한국춤이 추어진다.


푸르른 청보리에 파아란 바다. 그리고 한쪽에는 제주도가 다른 한쪽에는 마라도가 보인다.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이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북적거리는 사람도 어디로 흩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걷는 이 길이 마냥 행복하다. 


제주에 온 지 두달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정착이 아닌 체류에 가까웠다. 함께 체류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만남과 만남이 이어지고 결국 세상이 참 좁다고 느끼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오히려 호기심이 늘어간다. 서로가 열려있고 이끌림이 있다. 제주센터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벌써 한달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니, 그동안 정들었던 마음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온다. 그들 마음속에도 제주가 가득하다. 앞으로 다가올 5월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어떤 사람들이 올 것인지, 나와는 어떤 관계가 형성이 되려는지 궁금하다. 이미 아는 사람들이 올 수도 있고, 지인의 지인일 가능성도 있고, 새로운 영역에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또다시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교집합을 찾으며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적응하며 한달을 보내겠지.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지만, 새로운 기다림은 두근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Space & Pla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