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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May 16. 2020

예민하다

앞으로는 비단처럼 섬세하다고 말해주세요

나는 몹시 예민하다.

평소에도 자주 듣는 말이다. 감정, 생각, 후각, 청각 등 뇌를 통한 모든 것에 예민하다.

가령 누군가 볼펜을 ‘딱딱’하고 눌렀다, 떼기를 반복하거나, 껌을 ‘딱딱’ 소리 내며 씹거나, 다리를 ‘덜덜’ 떨면서 부스럭거리면 견딜 수 없이 예민해진다.

조용히 해달라고 정중한 부탁을 하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용기도 없다.


축구선수 시절에도 예민했다. 시합 전 컨디션에 예민했으며, 골을 먹으면 내 탓 같았고, 나에게 패스를 하지 않으면 나한테 화가 난 줄 알았으니까.


전에 언급했던 영화 원티드(2008년)의 주인공 웨슬리와 많이 닮아있다. 주인공은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만큼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흡사 ‘공황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웨슬리는 그저 약에 의존하며 참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예민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예민하다’는 말만 들어도 예민해진다고 한다. 나 역시 단어만 쳐다봐도 예민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예민함’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으니, 지금 내가 얼마나 예민하겠는가 ㅎㅎ

예민함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졌다. 예민함을 느끼는 포인트도 늘어갔다.


- 타인의 감정에 예민해서 갈등이 자주 생기는 일일드라마가 싫다.

- 혼자 있는 공간이 좋고, 집이 제일 편하다. 집에 오면 내 등에 충전기를 꽂은 기분이 든다. 

- 메신저 대화 중 말 줄임표(...)를 붙이면 기분이 안 좋은가 하고 신경이 쓰인다.

-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맛집보다, 맛없어서 파리만 날리는 곳으로 간다.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뾰족해진다. 스크래쳐에 열심히 발톱을 갈고 있는 고양이 같다.

예민함을 싫어할수록 더욱 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없애버리거나, 생각을 달리하여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1. 예민함을 없애보자

예민한 상황이 닥치면 용기 내서 얘기를 해보자. 말로 하기 어렵다면 메모를 해서 전달하는 방법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해봤다.

지금 내 앞에 오후 내내 훌쩍거리는 직원이 있다. 메모지에 ‘훌쩍거리지 마세요’라고 썼다가 ‘감기 걸리셨나요?’라고 고쳐서 전달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죄송해요. 비염이 심해서요 ㅜㅜ’


감정은 조금 누그러들었으나, 훌쩍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거슬리고 듣기 싫었다.

이 방법은 나와 맞지 않나 보다.


2. 예민함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자

‘예민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예민하다’는 말은 바꿔서 생각하면 타인보다 ‘섬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부분을 혼자 느끼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잘 공감하고 그만큼 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들은 ‘관찰력’도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작가를 포함해서 예술적 창작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없는 줄 알았는데 장점이 있다.

개인마다 예민함을 느끼는 부분에 차이가 있고, 그 예민함을 바탕으로 신경질적이지만 않는다면, 굳이 고쳐야 할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거 잘만 활용하면 괜찮은 성격인데?’



주변에서 누군가 예민한 성격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얘기해주길 바란다.

당신은 예민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섬세한 편이라고’...


예민한 성격을 고치라고 말하는 것부터 그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숨게 만든다.

본인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자신의 예민함에서 장점을 찾아보고, 본인이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로 인해 피해를 받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신신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산다’


또 김국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그렇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자.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야 한다.



그래도 몸은 둔해서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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