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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Aug 04. 2020

위로인 줄 알았는데 자랑이었네

성장하는 중.. 아마도?

2년 만에 풋살동호회에서 공을 찼다. 축구를 시작한 이후 치아를 하얗게 드러내고 배를 잡으며 공을 차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종아리가 뻐근해질 때쯤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고, 대충 땀만 닦은 채 동호회 사람들과 근처 맥주집으로 이동했다. 모임에 처음 참여한 나를 향해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졌다. 가벼운 호구조사를 마치고 연거푸 서너 잔을 마셨더니 얼굴이 후끈했다. 나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옆자리 동생과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뭐하시는 분이예요?

쉬는 날 주로 뭘 하냐고 내게 물었다.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글도 조금 쓴다고 말했다. 내심 나는 운동선수 출신이지만 지금은 사회적 지위가 있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글도 쓰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 졌다.


글을 쓴다는 나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듯했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쓰냐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은 투로 축구선수 생활을 통한 직장생활의 현실조언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다고 했다. 대인관계와 단체 생활에 어려움을 가진 직장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처럼 배운 것 없는 운동선수도 성공까진 아니지만 번듯한 직업을 얻고, 사회에 적응하며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는 거창한 말도 덧붙였다.

‘대단하다’, ‘멋지다’, ‘훌륭하다’, ‘나중에 꼭 책이 나오면 좋겠다’

내가 예상한 반응이었다.



뜻밖의 말

“언니는 위로를 하고 싶은지 몰라도 당사자들은 자랑으로 밖에 안 들릴 수도 있잖아요. 노력한다고 다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했으나, 마음 한편에 양심의 소리가 들렸다.


자랑하고 싶은 거 맞잖아! 까만 하늘만 쳐다보며 눈만 꿈뻑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왜 이렇게 까칠하지? 초면에 이런 거 실례 아닌가? 부러워서 그런 건가?‘

삐뚤어진 마음

얼마 전에 나도 그랬다. 구독자를 만 명 가까이 보유한 작가가 구독자에 연연하지 말라며, 자기도 마음을 내려놨다고 어느 누군가에게 댓글을 남긴 것을 보고 입술이 삐쭉거렸다.

자기는 구독자가 만 명이나 넘으니 마음이 편안할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독자수 하나에도 이런 삐뚤어진 마음이 들었는데 인생이 어쩌고, 삶이 어쩌고 하면서 노력하면 나처럼 된다고 말하는 나는, 현실의 답답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얼마나 얄미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나도 매일 실수를 반복하고 있고,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다. 내가 쓴 글과는 다른 삶을 아직 살고 있다. 살찐 사람이 홍보하는 다이어트 약과 같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아련한 느낌으로 적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저 기억나는 데로 적기만 하면 된다.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면 그만이다. 시간이라는 진통제의 효과를 새삼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읽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나 혼자 즐거웠다. 어쩌다 운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으면 재미있어하겠지 라는 생각도 했다. 브런치에 한글 타자 연습을 했구나 싶었다.



주변을 관찰하라

강원국 작가는 ‘나는 말하듯이 쓴다’라는 책에서 주목과 관찰에 대해 언급하며, 주목이 아닌 ‘관찰’로 쓸 때 가장 나답다고 했다.

과거의 축구선수라는 도전에 ‘주목’했던 삶 자체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나와 내 주변을 ‘관찰’하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어야 했다.

그저 나는 이렇게 성공했소~라는 식의 글은 독자에게 전혀 공감을 줄 수 없다.

늘 겉돌고 방황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업무가 바쁨을 핑계로 글을 자주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숙제하듯 글을 쓰기 싫었고, 의미 없이 발행 글만 늘어가는 게 싫었다. 모임에서 만난 그 사람을 통해 약간은 따끔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진지하고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1) 위로를 하고 싶은 것인지?

2) 공감을 얻고 싶은 것인지?

3) 조언을 하고 싶은 것인지?


결국, 누가 읽었으면 하는지?



불현듯 출간을 코앞에 둔 코붱 작가님의 책 제목이 떠 올랐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이렇게 살짝 홍보해봅니다. 작가님 책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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