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톤 May 14. 2021

리더라면 '그들'처럼

'노는 언니' 속 리더의참모습

요즘 '노는 언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박세리 감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해서 정말 '노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고기를 몹시 사랑하는 나는 박세리 감독이 고기를 구울 때마다 탄성을 지른다. 어쩜 그리 다들 잘 먹는지, 하필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잘도 골랐네.

물론 맛있는 음식, 남일 같지 않는 운동 이야기 외에도 '노는 언니'에는 특별함이 있다.


'노는 언니'에는 운동선수들이 모여있음에도 선배의 권위의식이나 후배의 눈치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친구처럼 서로를 챙기며, 정말 재미있게 열심히 먹고 논다. 감히 눈도 못 마주칠 '대 선배'와 서로 놀리고 장난치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그러다 힘들고 속상한 일엔 누구보다 든든한 선배가 되어, 따뜻하고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어설픈 조언도 지적도 없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도 어느새 함께 울고 웃는다.


기린 언니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은퇴 후 현재 여자 프로배구 해설을 하고 있는 한유미 위원은 고정 출연자다. 프로배구 선수는 김연경 선수밖에 몰랐기에 그저 '키 진짜 크다!' 라며 감탄만 했다. 그러나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말랑말랑한 말투와 허당끼 가득 정감있는 모습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사에서 '짐꾼짤' 기사를 본 것은 그 무렵이었다. 기사에는 한유미 위원의 선수 시절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듯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찍힌 그 사진은 어깨에 짐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그 사진을 보고 '이게 뭐? 왜?'라는 생각을 했다. 딱히 잘 나온 사진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한유미 위원은 당시 팀 내 맏언니급 고참 선수였다. 


 '평등'과 '배려'라는 단어가 운동부에게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 후배들은 많은 일을 해야 했다. 합숙소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단체'라는 굴레는 후배에게만 적용되었다. 분명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단체 운동'인데 그것은 훈련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후배가 선배의 짐까지 드는것은 공기처럼 익숙했다. 그렇게 보고 자라며 계절이 바뀌듯 '악습'은 되풀이 되었다. 


'보상심리'라는 말이 있다. 일정 행동을 취하면 그에 부합하는 대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회사에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하는 마음이고,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아 늘 '이놈의 회사'라고 흉을 보는 그런 심리다. 이러한 보상심리는 간혹 부정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복수심'이다. 복수심을 불러오는 첫 번째 생각은 '나도 당했으니까'이다.


한유미 위원, 아니 그 당시 한유미 선수도 후배 시절 많은 고충을 겪었을 것이다. 문 닫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문틈에 손을 끼고 조심스럽게 닫았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짐작이 간다. 그런 한유미 선수가 팀 내 최고참이 된 후 이 '악습'을 끊어야겠다고 가장 먼저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가장 먼저 실천한 사람임은 틀림없다. 한유미 선수가 집어 든 짐 가방 하나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다른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팀 내 다른 선배들도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고, 타 배구팀에도 점점 번져나가게 된 것이다. 만약 한유미 선수가  '나도 후배 때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꽃게 과자를 먹고 있어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세상 귀여운 캐릭터 잠옷을 입고, 군것질을 손에 놓지 않는다. 모든 운동을 다 섭렵할 것 같지만 예상 밖 구멍이기도 하고, 제일 먼저 나서서 식사 준비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할 정도로 친근하고 푸근한 동네 언니 같았다. 그래서일까. 유독 박세리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게스트가 많다. 박세리 감독은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한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부분은 박세리 감독이 상대의 고민을 대하는 '자세'였다. 한참 어린 후배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미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상황일 것이다. 게다가 운동 선배이자, 인생의 선배로써 담담하게 건네는 조언은 과함이 없다. 난 국민 영웅이니까, 너 보다 선배니까 따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아도, 심지어 고추냉이 맛 꽃게과자를 먹고 있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노는 언니'에서 박세리 감독은 이렇게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학급의 반장부터 회사의 팀장, 사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 '리더'는 존재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리더'가 되어있기도 한다. 팀원들에게 '꼰대'소리를 들으며 오징어처럼 씹히고 있는 저 팀장도 한때 파릇하고 어리바리한 신입사원이었다. 다만 '악습'으로 인해 변질된 보상심리와 교만한 마음이 그를 '꼰대'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나도 저 나이 때 그랬으니까', '나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지금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복수심에 지나지 않는다. 


커피 한잔을 타 놓고 내 주변의 '악습', '관행'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봤다. 너무 많구나. 나도 오징어였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도 스트레칭으로 풀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