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사이의 싸움은 언제나 치열하다
엄마와 딸, 모녀의 관계는 그 어느 관계보다 신기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사이 같다가도 정말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운다. 10대 20대 때에만 엄마랑 싸우는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도 여전히 엄마랑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30대가 되어 싸워보니 엄마가 내 10대와 20대 시절 엄마와 조금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아니 진짜 왜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그래?
얼마전 30대가 되어 엄마와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이렇게 크게 싸운건 20대 중반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 때도 아주아주 사소한걸로 싸워서 뭐 때문에 싸웠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최근에 싸운 것도 고작 "콜라"때문에 싸움이 촉발됐다.
외할머니가 당뇨로 고생하신걸 본 엄마는 탄산음료라면 아주 치를 떤다. 왜냐면 젊은 시절 할머니가 당뇨인지 모른 채 탄산음료를 즐겨드셔 당뇨가 일찍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가지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파는 나는 최근에 제로콜라에 꽂혀서 몇주 동안 퇴근길에 제로콜라를 사왔다.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기도 하고 술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 싫어 제로콜라를 즐겨마셨다.
금요일 퇴근길에 주말에도 마시려고 제로콜라 2+1을 사왔는데 그걸 보고 엄마가 기겁을 했다. 평소에도 제로콜라는 당이 없다고 누누히 엄마한테 말했지만 엄마는 콜라는 콜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로콜라 3병을 사오자 엄마가 화를 내길래 "아 오늘까지만 먹을게"라고 나름 귀엽게 투정을 부리며 슬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투정이 먹히질 않았다. 엄마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저녁을 차려주면서 그릇을 식탁에 툭툭 놓으면서 아주 기가막히게 가슴에 꽂히는 말들을 했다. 밥을 혼자 먹으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니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그냥 이번주 일이 너무 힘들어서 술도 아니고 제로콜라를 사온건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밥숟가락으로 그릇을 박박 긁어대며 밥을 먹었다.
너는 도대체 왜 엄마 마음을 몰라?
콜라 때문에 그러는 엄마가 미워서 밥그릇을 박박 긁어대며 싱크대에 밥그릇을 툭 던지고 방문을 쾅닫고 방에 들어가버렸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자 동생이 느낌이 쎄했는지 방에서 나왔다. 엄마가 방에 들어가는 나를 보고 '밥그릇 툭툭과 방문 쾅'에 꽂혀 화를 내자 나도 나와서 도대체 왜 '콜라'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냐고 내가 반박을 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아빠만 있었어도 왜 콜라때문에 그러냐고 싸우기 전에 중재를 했을텐데 하필 그날 중재자인 아빠가 저녁을 먹고 오는 날이었다. 엄마는 "왜이렇게 콜라를 자주 먹냐 몸에 안좋은데 내가 먹지 말라고 했지", 나는 "오늘까지만 먹는다고 했잖아 내가 술 사왔어?"라고 자기 주장만 펼치며 싸웠다. 금요일 저녁에 기분좋게 콜라를 먹으면서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콜라 때문에 그러는 엄마를 보면서 속상해서 우니까 엄마는 "왜 너는 엄마 마음을 모르냐"며 더 화를 냈다.
아 맞다 엄마 갱년기지
둘이 서로 평행선 처럼 자기 주장만 하며 싸우기만 하고 엄마가 화를 너무 내니 안되겠는지 동생이 그냥 방으로 들어가라 그래서 할말이 많았지만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서 콜라 때문에 뭐라고 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서럽게 우는데 나랑 싸운다고 혈압올린 엄마가 걱정이 됐다. 40대 때의 엄마랑 싸울때는 엄마 혈압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는데 내가 큰잘못을 해서 싸운것도 아닌데 엄마가 너무 걱정됐다. 너무 걱정됐는데 싸운 상태라 괜찮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해가 안가는 이유로 화를 내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이 든게 '아 맞다 엄마 갱년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부쩍 덥다면서 땀을 평소보다 많이 흘리고 사소한 일에 발끈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엄마가 갱년기라 그런가봐"라는 말을 스치듯이 몇번 말한게 생각이 났다. 그땐 아무렇지 않게 넘어 갔는데 엄마가 별것도 아닌거에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건 '갱년기'라는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엄마의 갱년기를 평소에 간과한거 같다.
10대 사춘기 시절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했던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짜증을 내도 다 받아 줬던 엄마다. 10대시절 싸우고 난 후에도 공부에 방해될까 아침밥을 챙겨주며 먹고가라 그러고, 학교 갔다 오면 항상 싸움의 원인은 나였는데 엄마가 먼저 화해의 의미로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두고 나갔다. 20대 때에도 학업 및 취업 스트레스로 이유없이 짜증을 낼 때면 그 때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줬던 엄마다.
10대 20대 시절 싸우고 난후 먼저 손을 엄마가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준것 처럼 이제 내가 엄마에게 이해하려 하지말고 손을 먼저 내밀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 사건 이후 평소 같으면 몇일 냉전이 지속됐을거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싸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랑 빨리 화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음날 저녁에 "진짜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그래"라고 말하면서 식탁에 앉았는데 웃음기 없이 말하려고 했지만 막상 엄마 얼굴을 보니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도 어이없었는지 피식 웃으면서 싸움은 마무리 됐다. 엄마가 10대 20대의 나에게 어떠한 마음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