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다 잘될거야 아빠
어렸을 때 아빠가 자주보는 TV 프로가 3개 있었다. 바로 야구, 뉴스, 홍콩영화다. 주말이면 늘 아빠는 홍콩영화를 봤다. 어렸을 때 아빠가 보던 야구와 뉴스는 싫었지만 홍콩영화는 가끔 아빠 옆에 앉아서 봤던것 같다. 아마 그 시절 홍콩의 화려함과 홍콩영화의 세련미 때문에 어린나이었지만 끌렸을지도 모른다. 홍콩영화를 즐겨 보는 아빠 덕분에 광동어와 이소룡, 주윤발, 유덕화, 곽부성과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내 세대의 배우들은 아니지만 매우 익숙하고 내 첫 해외여행이 홍콩이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빠를 많이 닮은 나
나는 아빠를 정말 많이 닮았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외모도 많이 닮았지만 음치 몸치 박치인것도 아빠를 닮았다. 엄마랑 동생이 가끔 내가 이 노래나 춤 아냐며 흥얼 거리거나 따라할 때 음이나 박자가 하나도 안맞다며 놀리는데 그럴때면 아빠가 음치 몸치 박치인 나를 보며 왜 하필 그런걸 닮았냐고 농담삼아 미안하다고 한다. 심지어 식성도 비슷한데 아빠랑 나는 입이 짧아서 그런지 가리는 음식이 많고 싫어하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똑같다. 그럴때면 엄마는 어쩜 그렇게 아빠랑 똑같냐고 할 정도다.
외적인 거나 식성 뿐만 아니라 취향이나 감성적인 면도 아빠와 굉장히 비슷하다. 나는 재즈를 정말 좋아하는 데 아빠는 재즈같은건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안방에 뭘 가지러 가다가 아빠가 재즈를 누워서 듣고 있는 거 보고 정말 놀랐다. 너무 놀라서 아빠한테 재즈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색소폰 소리가 좋다면서 아빠가 재즈 좋아하는거 몰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가끔 어떤 말과 상황에 아빠랑 나는 똑같이 공감하지만 동생과 엄마는 왜 저렇게 감성적이냐며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걸 보면 아빠랑 나는 공감포인트와 감성의 결이 비슷한것 같다.
그 시절 추억은 잠시 일상을 잊는 진통제
앞자리가 바뀐지 얼마 안되고 이제 곧 뒷자리가 바뀔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30대 초반이 되어 20대와 다른 점은 예전에 10대 20대 시절 즐겨보던 영화, 드라마나 노래를 추억하며 보는 것이다. 나는 똑같은 영화, 드라마, 책을 한번 보고 난뒤 절대 두번은 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 가끔 주말에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특히 10대시절 나를 위로해 줬던 영화나 내가 10대였던 2000년대 중후반에 유행했던 드라마를 본다. 지금 10대 20대때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면서 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만큼은 사회인으로써의 책임과 스트레스를 잊어버린채 그 시절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10대였던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보고 가끔 보고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아는 내용인데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아빠도 주말에 홍콩영화를 볼 때면 일상의 책임을 잠시 내려 놓은 채 홍콩영화 볼때의 10대 20대에 빠져들어 시절을 추억하며 보고 또 봤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어린시절 내가 기억할 정도로 분명히 본 영화인데 보고 또 보고 그랬었다. 그 시절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시절의 기억과 느낌 심지어 냄새까지 나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할아버지가 아빠가 결혼하기 전 20대 후반에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아마 홍콩 영화를 봤을 때 그 시절의 젊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을 추억하며 본 영화를 반복해서 봤을런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 잠시나마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내려 놓고 싶어 진통제 같은 10대 20대 시절 홍콩영화를 찾지 않았을까?
내가 일상의 불안함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해소하기 위해 예전 영화나 드라마를 찾은 것처럼 내가 닮은 아빠도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시절 홍콩영화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서 안건데가족들이 걱정할까봐 특히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힘든일을 가족 모르게 아빠 혼자 감내하며 버티고 해결했던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지나고 난뒤 그 사실을 엄마에게서 듣고 앞에선 그랬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사실도 모른채 철없게 행동했던 내가 밉고 혼자 오롯이 감내한 아빠가 안쓰러워 방에서 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막 30대가 된 내가 홍콩영화를 주말마다 보던 그 시절 30대의 아빠에게 앞으로 몇번의 작은 위기는 있겠지만 결국엔 아빠 힘으로 그리고 가족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결국엔 다 잘 될꺼야 아빠"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