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사람냄새나는 을지로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한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적으로 주어지며 똑같이 흘러간다. 그 어느 누구도 흘러가버린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시간을 잡을 순 없어도 시간이 멈춘 장소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을지로이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되면서 필름 현상소에 가느라 을지로를 자주 방문하게 된다. 필름 현상소는 인쇄소가 모여있는 곳에 많이 있는데, 인쇄소 골목마다 있는 낡은 골목들을 보며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시간은 갔고 계속해서 간다.
고민이 많던 사춘기 시절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3시절 압박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자 아빠가 해주신 말이 있다. "그렇게 시간은 가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라고 말이다. 그 땐 지금 내 상황이 너무 힘든데 시간이 간다고 말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빠 말이 맞았다. 그 당시 너무 힘들었어도 시간을 결국 흘렀고 그 시절이 빛이 바래 추억이 되어버렸다. 언제인가 시골에 갔을 때 친할머니도 아빠가 나에게 해준 말처럼 똑같은 말을 아빠에게 해주셨다. "지나고보니 다 아무것도 아니더라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라고 말이다. 시간을 흘러내며 살아낸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다 느끼는 시간을 체감한 말인가보다.
여러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시간이 멈춘듯한 을지로를 가보면 시간이 지나며 지층이 쌓이듯이 오랜시간동안 흘러간 여러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 같다. 인쇄소를 비롯해 노포, 미싱사, 귀금속점, 원단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이 을지로를 지키고있다. 몇십년 동안 을지로는 그곳에서 일하며 지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가족들을 먹여 살렸을 생업의 터전일 것이다. 이러한 을지로의 오래된 골목 바로 옆에 여러 다양한 대기업 본사가 위치해 있지만 을지로에 쌓인 그 시간만큼은 따라 잡을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 을지로가 힙지로라고 불리며 오래된 가게를 개조해 카페, 음식점 등 뉴트로 감성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을지로만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간의 층을 쌓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