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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녹 Sep 19. 2023

만약 우리 마주치면 그냥 모른척해줘요

기리보이 교통정리

얼마전 회사에서 한창 일하고 있던 오전에 누군가에게서 카톡이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카톡같았다.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메시지 같을 수록 신경이 쓰여서 더 보고 싶어졌다. 카톡을 보니 예전부터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던 A에게서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냈다. A가 결혼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서 결혼 소식이 기쁘고, 소수만 참여하는 결혼에 초대해 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결혼식에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A는 엑스와도 아는 사이기 때문이다. 그도 올 결혼식에 차마 갈수 없다.


그날 오전 받은 청첩장이 과거 기억의 트리거가 돼서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이 나쁜것 같기도 하고 싱숭생숭한것 같기도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같이 점심을 먹자던 팀원이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밥을 먹었다. 아무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 이후에도 일이 집중이 안돼서 반반차를 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일을 하고 퇴근길에 머리가 멍했다. 그래서인지 내려야 할 역을 두정거장 지나서 헐레벌떡 내렸다. 두정거장 뒤에 내리니 뭐때문에  정신줄을 놓고 있나 싶어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좀 더 잘지냈으면 좋겠어


헤어짐은 복합적이다. 누군가 헤어지면 왜 헤어졌냐고 묻곤 하는데 그걸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왜 남에게 왜 둘만의 헤어진 이유를 설명해야할까? 헤어지면 모든걸 지우고 잊는다. 그게 다음에 올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지인을 봤다.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충격적이라 못잊어서 가지고 있는거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자기가 잘나와서 가지고 있다거나 못잊었다기 보다 그때 그 시절을 가지고 있는거라고 했다. 오히려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다 칼같이 지우냐고 반문했다.


헤어졌다고 해서 그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는건 아니다. 그냥 잘 지냈으면 좋겠다. 기리보이의 '교통정리'처럼 만약 마주치더라도 잘 지낸다면 그냥 모른척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와 헤어진 그에 대한 소심한 복수심으로  내가 그래도 좀 더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그가 올것같은 A의 결혼식에 혼자 초라하게 가기 싫었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올 수도 있으니까. 내가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있거나 결혼을 했다면 A의 결혼식에 갈 수 있었을까?


"왜 결혼 안해?"


요즘 외갓집에 가도, 친가에 가도, 친척들을 만나도 회사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지인들한테도 질리도록 듣는 말은 "왜 결혼 안해?" "결혼 언제할꺼야?"와 같은 결혼과 관련된 말이다. 내가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에 대한 답으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으니까요."라는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런 말을 들을수록 그냥 결혼 적령기라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며 그러게요 허허 웃으며 넘겼는데 최근에 하도 들어서 그런지 오히려 현재 미혼인 내가 잘못하고있나? 왜들 이렇게 오지랖이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부모님은 빨리 가지 않길 바라신댜. 아빠는 장난삼아 우리랑 더 같이 살다가 천천히 시집가 라는 말도 한신다.  최근 부모님 지인들의 자녀들도 대부분 결혼 적령기이기에 주말이면 결혼식에 자주 가시는데 최근들어 결혼식 간다는 말도 안하고 결혼식에 가신다. 딸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감이 들지 않게 하려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배려가 역설적으로 내가 결혼 적령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귀여운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보통 20대에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20대때부터 아기들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의 젊은 엄마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30대초 미혼인 지금 젊은 엄마가 되는건 어려울것같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만나는 건 언젠가 가능할꺼라고 생각하고 있다.



 A의 청첩장을 받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A를 못잊어서는 절대 아니고 그냥 현재의 내가 그보다 더 낫지 못해서 복수를 하지 못할것 같은 마음이 가장 크다. 지나간 인연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이 뿐만 아니라 결혼 적령기인 지금 심란한 마음과 함께 복합적인 이유로 가지 못하는 것 같다. 결혼을 한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결혼식을 하면 주변 지인이 정리가 된다고 했다. A와의 과거 인연이 있는만큼 축의금은 보내겠지만 아마 나도 A의 인간관계에서 앞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TCU-6sbbv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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