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 꿈속에서
고등학생이던 십몇년전 3월 모의고사를 보고나면 중간고사 그후 6월 모의고사 기말고사, 짧은 방학, 그리고 그 짧은 방학동안의 많은 학원 특강들, 9월모의고사, 중간고사, 11월 모의고사, 기말고사, 겨울방학을 반복하며 시험과 공부에 매몰되어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너무나도 힘들었다. 한창 특목고 진학이 유행할 때라 외고에 떨어지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자존심이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땐 도대체 어디서 이 힘듦이 오는지 몰랐지만 이제와서 보니 나에 대한 주체성을 잃어버려서 였던 것 같다. 외고 준비도 남들이 꾸는 꿈을 꾼 것이었고,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것도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한다는 부모님의 꿈이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스탠드 불만 켜진 깜깜한 자습실에서 선생님 몰래 아이팟에서 유튜브로 우연히 전람회의 "꿈속에서"를 들었는데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꿈을 꾸고 있네 어디인지도 모른 채 어둔 세상은 모두 잠들고 나의 숨소리뿐 난 취해 가는데 깨워주는 사람은 없네..." 이 가사가 그때의 내 상황과 비슷해보였다. 내가 태어난 해에 데뷔한 전람회의 노래는 내 고등학교 시절 내내 큰 힘이 되어줬다. 그 후 나는 남들이 꾸는 꿈 말고 진짜 내 꿈을 찾기 위해 부모님과 투쟁했고 부모님이 바라던 길을 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진짜 내 꿈을 찾기위해 한번 더 부모님과 부딪혀야 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갔다. 내가 가고싶었던 길을 갔다고 해서 완전히 만족하는건 아니지만 아마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갔다면 주체적으로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해 반드시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알아갈 때 항상 물어보는게 "꿈"에 대한 것이다. 소개팅이든 회사든 지인들과의 술자리 등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사람들에 대한 꿈이 궁금해진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반응는 딱 두가지다. 첫번째 반응은 "뭐야 왜 그런걸 물어봐? 뭐 잘못먹었어?"이고, 두번째 반응은 자신의 꿈에대해 눈을 반짝거리며 신나서 얘기하는 반응이다. 첫번째 보다는 꿈이 있는 두번째 사람들을 더 알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자신의 꿈에 대해 신나서 얘기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의지와 생기가 넘쳐 보여 그 에너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
내 꿈은 셀수 없이 여러번 바뀌었지만 궁극적인 꿈은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예전엔 나이가 많으면 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것 같진 않다. 멋진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나이만큼 그 나이에 맞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할머니가 된다는 건 내가 할머니가 될때까지 건강하고 내 자녀가 있으며 내 자녀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뜻한다. 내 아이의 아이에게 그동안 살아온걸 나눠 줄 수 있고 해주고 싶은걸 모자람 없이 해줄 수 있는 경제력까지 갖춘 할머니라면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멋진할머니가 되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RgjZLLB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