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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길 산책

by 엄마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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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요즘 2호가 유치원에서 봄꽃을 배우고 있어서 그런지 꽃에 관심이 많다. 특히 좋아하는 꽃은 개나리인데 아파트 단지 안에 흐드러진 개나리는 없어서 둑길에 다녀왔었다. 그땐 벚꽃이 피기 전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등굣길에 유심히 지켜보다가 오늘 산책을 결정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이르게 하원을 하고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샀다. 그리고 꽃구경을 가는 마음이 나도 설레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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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는 한가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적당히 있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날씨도 좋았는데 시간대 때문인지 햇빛을 받아 빛나는 꽃은 찍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양손에 아이들 손을 하나씩 잡고 꽃을 보며 걸으니 드디어 봄이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이는 꽃이 피어있는 모습이 구름 같다고 했다. 마침 하늘이 파란색이라 아이의 표현이 더 와닿았다. 만발한 봄의 벚나무는 구름처럼 뽀얗고 폭신해 보인다. 내일도, 모레도, 이 꽃의 계절이 끝나기 전에 더욱 부지런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기분 좋게 걷던 중에 갑자기 2호가 주저앉았다.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결국은 집에 오는 길에 아이를 업고 와야 했다. 구름 같은 꽃을 보고 오는 길에 업은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무게는 구름 같지 않았지만 오후의 짧은 산책에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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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안에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철쭉, 명자나무, 목련, 목단화, 동백에 무궁화까지 꽃나무가 무척 많다.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계절이 바뀌는 모든 순간을 매일 눈에 담을 수 있다. 단지 안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흐드러진 벚꽃은 굳이 보러 나오고 싶었다. 매년 피어서 새로울 게 없이 늘 보던 바로 그 풍경이어도 나는 굳이 그 자리에 가서 보고 싶다. 그래서 2호의 체력으로 왕복 거리를 혼자 걸을 수 없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것이다.


꽃을 굳이 가서 보고 싶은 것처럼, 가 봤던 여행지를 또다시 가고 싶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은 경험해 봤던 것들이다. 보고 싶은 영화는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거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이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먹어봤던 것 중에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만큼의 그릇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겠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온 시간 속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나라는 그릇을 키워주었다는 걸 새삼 생각한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은 봄을 겪어 본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 큰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곳을 가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직접 세상을 부딪혀 보는 것들이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더 큰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그 경험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야 내가 너를 가두는 사람이 아니라 뻗어 나가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네가 보고 싶다고 하는 게 있을 땐 충분히 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궁금한 게 있을 땐 기꺼이 함께 탐험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엄마가 먼저 커져야겠지? 부지런히 책에서 경험해 볼게. 더 큰 그릇을 가질 수 있도록. 나중에 네가 자라서 내가 너의 엄마라는 걸 기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희는 어떤 모습이어도 내 기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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