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종로에서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종로면 멀지 않으니 함께 점심을 먹자는 것이었다. 4월 매주 수요일에 참여하는 수업이 있는데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지만, 엄마가 약속이 있으니 스케줄을 조정해 보자고 말했으나 아이가 갑자기 울었다. 너무 당황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늘 마켓데이라서 그동안 모은 칭찬 도장을 교환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포기할 수 없는 게 맞겠구나 하는 생각에 여유 있는 만남을 포기하고 달릴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등원을 마치고 바로 종로로 나갔다. 건강 검진이 끝나고 바로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제 비가 오랜만에 종각역에 도착해서 영풍문고를 갔다. 혼자서 여유롭게 책 구경도 하고, 문구류도 구경하고, 공저 책이 서가에 꽂혀있나 찾아도 봤다.
신기하게도 우리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독서지도 분야에 꽂혀 있었다. 새삼 반가운 마음에 단톡방에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린 나 혼자만의 서점 투어를 마무리하고 검진을 마친 지인과 익선동으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챗GPT에게 물어서 추천을 받은 빠리가옥으로 갔다. 프랑스 가정식이라니 너무 궁금했다.
밥을 먹고 여유롭게 카페도 가고 싶었는데 아이를 픽업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바로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이동해야 했다. 이토록 짧은 만남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였는데.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신데렐라는 자정까지만 돌아가면 되는데, 엄마는 아이의 시간표에 맞춰 허겁지겁 들어가야 한다. 어떤 날은 1시 반이고 또 어떤 날은 2시까지 가야 한다. 늘 헐레벌떡 달리기를 해야 하는 엄마는 운동화를 신는다.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파티에 간 신데렐라는 너무 신이 나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종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나간다. 나는 아이의 하교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산다. 집에 있을 때에도, 약속이 있어서 나갔을 때에도 나의 알람은 언제나 아이의 하교 시간이다. 그만큼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엄마의 삶이 너무 정신없이 바쁘다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짧은 만남이 늘 아쉽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글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나는 매일 매 순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자정까지면 시간이 제법 길었을 텐데 종소리를 듣고서야 시간을 자각한 신데렐라처럼, 나도 주어진 시간을 보내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일어서는 타이밍을 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 하루도 감사하다. 고정된 스케줄 사이사이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내 시간이 없다고 속상해 하기보다 하루 중 내가 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발견해가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도 감사하다. 짧은 시간이어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 밥을 먹었고, 혼자서 여유롭게 서점 구경을 했으며,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오늘 내 하루가 감사하다. 내 시간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내가 누리고 있는 시간에 감사해야지.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