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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를 하지

by 엄마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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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를 하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맹세를 할 때마다 스틱스 강에 대고 한다. 그 맹세는 그 어떤 신이라도 어길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약속에 대한 보증이며 확신이다. 뜬금없이 스틱스 강을 왜 쓰고 있는 이유는 내가 오늘 이 표현을 그대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집에서. 책을 읽으며 일과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에게 양치를 하고 나오라고 했는데 한참 동안 둘이서 실랑이를 하더니 딸애가 동생에게 한 말이었다.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딱 저대로.


최근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져서 만화로 나온 책을 주야장천 읽어대더니 머릿속에 제법 들어간 게 있기는 있었나 보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 너무 웃겼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까르르 웃으며 그 말을 받으며 놀이를 이어가는 2호가 더 웃겼다. 아이들이 놀이 시간을 보면서 허투루 흘러가는 것이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의 시그널을 따라 하고, 그들의 말투를 따라 하는 것처럼 책을 보고 생활하며 스치듯 본 모든 것들이 아이들의 태도에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화낼 때 하는 표현을 그대로 닮아 동생에게 말하는 걸 볼 때마다 화들짝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 앞에서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못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내가 키우면서 배운다.


question-4189121_640.jpg?type=w1 출처: 픽사 베이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 걸까. 다시 가장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학습이 전부가 아닌데 나는 요즘 학습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과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10분의 1도 그 중요한 질문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좋은 어른으로, 내 아이의 롤 모델로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고 싶다고 하면서 마음과 다르게 자꾸 화를 내고 있는 내가 오늘 여기에 있다. 아이는 당연히 노는 게 즐겁고, 하루하루가 신날 뿐인데 내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자꾸 화가 난다. 행복한 아이를 보며 화가 나는 것만큼 육아를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없다. 근데도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지금 네가 그럴 시간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네가 지금 왜 신나고 행복한 거냐고 핀잔을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 시간이 아니긴 하다. 그래서 육아는 도무지 쉬워지지 않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오늘은 나도 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를 해야겠다. 화가 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내 화를 던지지 않겠다고. 울컥하고 올라오는 내 감정의 덩어리들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내겠다고. 너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하지 않겠노라고. 너에게 내가 존중받길 원하는 만큼 나도 널 존중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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