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되고 아이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짐을 챙겨서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종 치고 바로 나왔다면 요즘엔 길면 10분도 기다리게 되는 날이 있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시간을 맞춰서 학교 후문에서 기다리곤 한다. 보통 1시 20분이면 5교시 수업이 끝난다. 어제도 시간을 맞춰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같은 반 친구들이 하나 둘 지나가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핸드폰도 가지고 가지 않은 날이었다.
1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학교 보안관 아저씨께 반으로 연락을 부탁드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수업이 끝났을 테니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라며 방문증을 주셨다. 서둘러 건물로 들어서며 신발장을 먼저 확인했다. 실내화가 들어있었다. 그렇다는 건 교실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운동장에 보이는 애들은 없었고, 불안한 마음에 교실로 갔다. 교실이 잠겨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뛰쳐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아까 나온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혹시 나를 못 보고 놀이터로 바로 갔을까 싶어 늘 다니던 곳으로 갔다. 아는 얼굴이 보여 물어보니 아이를 후문에서 다른 친구들과 지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반대편에 있는 놀이터로 간 건가 하고 정신없이 달렸다. 거기에도 아이는 없었다. 그때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책가방에 달아둔 스마트태그의 위치는 학교로 나왔다. 그것도 확실하지가 않지만 다시 학교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아이가 놀이터에 있다고 전화가 왔다. 그때부터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당장에 내 앞으로 불러서는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다른 데를 갔다 오면 엄마가 걱정하고 한참 찾아 헤매고 다니는 거라고 말했다. 더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수영 학원을 가는 날이라 30분 뒤면 셔틀을 타야 한다고 말해주고 뒤돌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보는데 또 아이가 없었다. 정말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듯했다. 아까 받았던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놀이터 옆 편의점이었다. 방금 말했는데 아이는 또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결국 화가 터졌고, 놀이터에서 도서관으로 갔다. 필요 이상으로 화내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미 소리 질러버렸지만 친구들 앞에서 애를 잡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종이를 내밀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게 왜 잘못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쓰라고 하고 기다렸다. 아이는 뭘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한참을 망설이더니 우물쭈물 글씨를 써 내려갔다. 반성문도 써 본 사람이 쓰는 거라 일기 쓰기도 힘든 아이가 뭘 쓸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 안의 분노를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고, 아이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오래지 않아 아이가 다 쓰고 종이를 내밀었다.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고 나니 이제 상황을 마무리하면 된다 싶었다.
스스로 벌칙을 정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달 용돈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올해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반성문의 좋은 점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것은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필요한 시간을 준다는 것이었다. 불같이 치밀어 오르던 분노의 온도가 내려갔고,(화는 여전히 나긴 했다.) 아이도 스스로 잘못을 생각해 보고 글로 적어보며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황의 종료가 분명해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는 반성문에 날짜와 이름을 쓰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치 상황은 종료가 되었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수영을 하러 갔다.
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혼자 집에 가서 놀라고 화났던 감정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이었고, 아이는 그저 친구랑 조금 놀다 나왔을 뿐이었다. 그냥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면 "오늘은 오래 걸렸네?" 하고 웃을 수 있는 고작 15분이었다. 내 안의 불안이 문제였을까. 육아를 하며 느끼는 불안은 최선을 다해 덜어내야 하는 감정이며, 최선을 다해 아이를 신뢰해야 한다는 걸 다짐한 하루였다.
너는 충분히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엄마가 조금 더 믿기로 할게. 엄마도 화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