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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나, 엄마가 되고 있는 나

by 엄마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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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중에서도 연예인을 보는 내 시선의 변화가 그렇다. 어렸을 때는 '오빠'를 찾으며 동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들의 이미지를 투영해서 이상형이 만들어졌고,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그 이상형을 기다리며 낭만적인 연애의 순간을 꿈꿨다. 그러다 이제 내 눈에 들어오는 연예인에 대한 감상은 '참 예쁘다' 혹은 '참 잘 컸다'이다. 나도 내 아들을, 내 딸을 저렇게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십 대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마어마한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내가 보는 서른은 아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른이 되었다는 연예인을 보면서도 '아 나도 저렇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요즘 그렇게 예뻐 보이는 연예인은 비투비의 이창섭이다. 말도 예쁘게 하고, 유튜브나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성격도 좋고, 가족과 관계도 친밀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컸을까, 저 엄마는 참 좋겠다' 하면서 알고리즘에 나올 때마다 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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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창섭이 <적당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밀리의 서재에 올라온 걸 보고 기분 전환 삼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에서 보이는 작가는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지만 근처에 사는 엄마와 커피숍에서 만나는 아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다정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엄마는 대체 아들을 어떻게 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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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아들이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장에서 찾았다. 경험하고 실패할 여유를 주는, 기꺼이 기다려주는 엄마였다고.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엄마였다고. 내 눈에는 뻔히 결과가 보이더라도 아이가 굳이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도 너 스스로 경험해 보라고 기회를 주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내게는 더 그렇다. 시행착오를 줄여주고만 싶다. 하지만 그게 진짜 아이를 위한 길은 아닐 수 있다는 걸 요즘에 자꾸 듣고 배우게 된다.


나는 누가 먼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면서 실패를 덜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아이는 뻔히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해 보고 싶고, 그러다 넘어진다고 말해도 기어이 넘어질 때까지 한다. 심지어 넘어지고도 똑같이 놀기도 한다.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부딪혀보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나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경험하면 좋은 것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좋은 쪽만 겪어보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좋고 나쁘다는 기준도 그저 나의 것일 뿐인데.


아이가 자랄수록 나의 기준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함을 느낀다. 그게 바로 아이가 독립하는 과정이 될 테니까. 나의 복사본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온전히 아이 자체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는 내려놓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밖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면 너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우리 엄마랑 나가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가야지. 다음에 친정에 가게 되면 신랑에게 애들을 맡겨두고 엄마랑 데이트하러 나가야겠다. 마트만 가지 말고.



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엄마는 나를 잘 키운 것 같아.

엄마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 것들을 지지해 주면서

방황하게 되더라도 그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엄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근데 엄마,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필요해.

이렇게 오래 육아를 하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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