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이해>를 읽고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내가 "이제 화내지 말아야지" 다짐한 날엔 꼭 아이가 더 심하게 짜증을 낸다.
엄마의 결심이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이라도 해보는 것처럼.
물론 내 노력을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쿵짝 정도는 맞춰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나 안 맞을 수가 없다.
아이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참고 있으니, 평소 조용히 지켜보던 남편이 대신 폭발한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상황이 없을 것 같다.
요즘 아이의 기분 변화가 심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나도, 아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출렁인다.
그렇게 마음이 부딪히고, 상처받고, 지치던 차에
<감정의 이해>라는 책을 만났다.
육아는 날마다 나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이의 감정이 파도를 칠 때마다 덩달아 나는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감정은 모두 다르다.
위의 문장을 읽고 나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춰놓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른인 나와 열 살 아이를 비교하다니.
엄마인 내가 아이를 안아줘야 하는데 되레 내가 이해 받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그 마음도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마음의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아이는 오늘도 짜증이 터졌다.
작은 다툼, 작은 서운함에서 터져나온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조금 달라져있었다.
아이는 내 표정만 보고도 알았다.
엄마가 화낸 준비가 아니라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걸.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의 모든 억울함과 서운함이 눈물로 쏟아졌다.
나는 가만히 두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감정은 억누르는 게 아니라, 함께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걸.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라는 걸.
함께 감정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이 중요하다.
위의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오늘 나는, 아이 곁에서 그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주는 사람이었다.
무서운 구간에서 조용히 손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우리는 함께 감정의 파도를 건너는 중이다.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이다.
내 눈엔 별일 아닐 수 있어도,
아이에겐 울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걸 존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배운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기.
육아의 목표는 독립이다.
독립의 시기가 왔을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르게 설 수 있는
성인으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만 앞서고 있었다.
아이의 자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것들을
너무 어른의 눈높이로 판단하고 있었다.
열 살은 많이 자랐구나 싶은 나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리다.
지금 아이의 수준에서 당연하게 나오는 짜증과 징징거림을
고쳐야 할 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고 흘려보낼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주는 것이 육아라는 걸 기억하자.
마음은 모두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지.
나에겐 울 일이 아니어도, 너에겐 울 일일 수 있는 거지.
내 눈엔 별것 아니지만, 너에겐 소중한 무엇일 수 있는 거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 모두 우리에겐 연습이 필요하다.
그저 내 눈빛만으로도 아이는 알았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만약 내가 화를 참으며 쳐다봤다면
그저 계속 짜증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을 품에 안고
억울한 마음을 흘려보내는 걸 기다려준 그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너의 옆에서 함께 감정의 파도를 겪으며 안정감을 줄 사람이 되고 싶다.
감정을 품는 일이, 아이를 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