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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코끼리 Oct 06. 2021

오늘 아침의 반성문

잔소리를 그치는 건, 언제 가능해지려나..

  비 오는 날은 엄마는 힘들지만 아이는 신난다. 우산을 드는 것도 좋고, 장화 신고 물웅덩이를 조심스레 밟아보는 것도 신나고, 우비를 단단히 챙겨 입고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달려 나가는 시간들도 행복해하니까. 다만 챙길 거 많은 엄마만 좀 귀찮아질 뿐. 


  오늘도 아침에 비가 왔다. 오늘은 혼자 등원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사실 다 핑계겠지만,) 그래도 제법 일찍 준비하고 서둘러 출발한 아침이었다. 둘째를 먼저 등원시키고(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첫째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비를 단단히 챙겨 입은 아이는 모자도 쓰겠다며 잔뜩 신이 난 상태였고, 나는 아이에게 유치원 가는 길이니 물웅덩이에서 첨벙 대는 건 지금 하지 말자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첨벙 대는 순간 옷을 다 버리게 되니까, 집에 가는 길에 하고 바로 집에 가서 씻자고 말을 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근데 얘가 계속 물 웅덩이를 밟아가면서 걷는 게 아닌가. 물이 튈까 봐 얼마나 조심조심 걷는지 뒤따라가는 나는 너무 답답해서 속 터진다 싶어진 것이다. 그 짧은 길을 가면서 애 이름을 몇 번을 부르고, 물웅덩이 피해서 걸으라고는 또 몇 번을 말했는지.. 사실 기억도 안 난다.


  잔소리를 안 하면 칭찬할 기회가 생긴다고 백번씩 다짐을 해도, 나는 또 잔소리쟁이가 되었다. 자그마한 뒤통수, 조심스러운 발거음, 작은 어깨를 지켜볼 수 있는 날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왜 나는 그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했을까. 심지어 시간도 여유롭게 출발한 아침이었는데 말이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등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한숨이 어찌나 나왔는지 모른다. 반성문을 백날 천 날 써도 왜 나는 여전히 성격 급한 엄마인 건지.


  사실 어젯밤 잠들 때, 아빠가 야간근무라 아빠가 보고 싶다며 한참을 우는 아이를 향해 나는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 조금 울다 잠들면 좋을 텐데, 어제는 유난히 오래 아빠를 찾고 울어서 빨리 육퇴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 나는 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아니다, 이건 화낼 일이 아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안 된다' 수없이 다짐하며 누르고 참았다. 너무 오래 울면 엄마가 속상하니까 이제 그만 울고 내일 아빠를 만나자고 다독인 밤이었다. 그랬는데 나는 결국 오늘 아침, 어제 눌러놓았던 짜증을 핑계 김에 터뜨린 것은 아니었을까.

 

출처: 픽사베이

  수없이 읽었던 육아서의 구절들이 스쳐 지나가고, 나는 오늘도 홀로 가슴이 무거워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네가 즐거우면 다 된 거라고,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고 그렇게 함께 행복한 시간들이 우리에게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알고 있다. 아이로 인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 더 많다는 걸. 그걸 끝까지 놓치지 않는, 잊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지. 


  반성문을 계속 써도 변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은 한 번에 변하기 힘든 법이니까. 포기하지 않고 칭찬하는 엄마로의 변화를 내가 더 많이 기대해야지.


  잔뜩 신난 너의 뒷모습을 볼 때면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오르는 날도 있는데, 오늘 엄마는 완전 엉망이었구나. 그래도 오늘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엄마 오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원 시간을 기다려보려고 해.

지나고 보면 너는 너무 금방 자라 버리는데,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너에게는 엄마가 너무 야박한 게 아닌가 오늘도 반성해본다.  우리 이따 반갑고 즐겁게 함께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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