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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코끼리 Nov 18. 2021

아이의 고백은 늘 돌직구다.

그리고 나의 반성은 늘 뒷북이다.

  잘 먹던 2호가 갑자기 밥을 안 먹더니 결국 탈이 나이 나타나서 월요일 아침부터 병원에 다녀왔다. 하필이면 지금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한창이라 유모차를 끌고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인데, 아픈 아이가 계속 매달려서 아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서 큰애 유치원까지 걸어가서 등원을 시키고 병원까지 또 안고 갔다. 일요일 내내 밥을 굶던 아이는 월요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다행히 밥을 먹은 다음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아직 완전히 장의 기능이 돌아온 게 아니라 먹는 걸 조금 조심하라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너무 늘어져있는 아이를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다시 안고 계단을 올라와서 가정보육을 하루하고, 다음 날은 보내도 될 거라는 희망에 차 있었다. 일찌감치 등원 준비를 마치고 막 나서려는 찰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옆 반 아이의 형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그래서 그 아이와 엄마, 아빠가 현재 검사를 받으러 대기 중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이를 보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또 가정보육을 하게 됐다.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의 1,2호와 언니

  다행히 가정보육 중이던 다른 집과 함께 공동육아를 해서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지만, 연속된 가정보육에 나는 결국 피곤한 거였을까. 씻고 자러 들어가야 하는데 애들이 둘이 싸우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닌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폭발하게 된 거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밤이 됐으면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엄마도 너한테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너도 동생한테 좀 친절하게 말하라고.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하는 말을 나도 소리치면서 말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건지.


  상황이 종료된 후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워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서 엄마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좋게 말할 수 있는 걸 화내면서 말한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아이를 서운하게 만든 건 바로 나였다.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나한테 화내도 엄마는 나 좋아하잖아.

  이 말을 듣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늘 얘기했던 거지만, 아이 입으로 들으니 그 기분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그럼~ 엄마가 화가 나도, 엄마는 늘 너를 좋아하지." 했는데 이어지는 아이의 말에는 그만 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뻔하고야 말았다.


나도 엄마가 화내도, 그대로 엄마를 좋아해.

  내 평생 들어본 고백 중에 가장 돌직구였지만, 가장 나를 울컥하게 한 고백이었다. 그대로의 엄마를 좋아한다는 말을, 화를 낸 게 미안해서 사과하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듣다니. 나는 6살짜리보다도 더 미숙한 감정표현을 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1호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하트


  아이와 한바탕 싸운 후, 아이가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을 때 아이를 먼저 안아주는 것에 얼마나 많이 망설였었는지. 말로는 늘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는 늘 내 기분과 컨디션에 좌지우지되어 참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분노했고, 다시 알려주면 되는 단순한 일에도 얼굴을 굳힌 적이 몇 번이었나. 너는 어떻게 나보다 더 상처 받고, 나보다 더 겁에 질렸으면서도 먼저 손 내밀어주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걸까.


  내 사랑아, 엄마는 너무 부끄럽고 또 속상했어. 내 인생 최고의 힐링은 너야. 그리고 내 인생 최고의 선물도 너란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내 소중한 보물인 너에게, 엄마는 오늘도 더 노력해볼게. 엄마의 기분이 너를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도록. 엄마의 피로감이 너를 몰아세우지 않도록. 그래서 엄마는 운동도 하고, 건강도 열심히 챙겨서 좋은 컨디션으로 육아를 감당할게.

  엄마는 오늘 불현듯 깨달았어. 네가 벌써 6살이잖아. 지금까지 함께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너는 나를 찾지 않겠지. 친구가 더 소중해지는 나이가 될 테니까. 그때가 되면 나는 또 아쉬워서 네 뒷모습을 바라보게 될 텐데, 하루하루 지나가는 지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게. 우리 더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쌓아가자.  


  어쩌면 아이의 사랑은 부모가 주는 것보다 더 맹목적이고 전부를 주는 것일지 모른다. 간혹 TV나 장난감이 더 소중해 보이는 순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 손을 내미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크기가 감히 가늠이 안 된다고 느낀다.


  언젠가 내가 다쳤을 때, 자기가 다쳤을 때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씩씩해졌던 것과 달리 한없이 걱정이 되는 눈빛으로 한참을 슬퍼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단지 엄마는 넘어졌을 뿐이고, 아프지 않다고 몇 번을 말해줘도 아이의 기분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었다.  내가 벌에 쏘였을 때도 걱정된다고 울어버렸던 네가 엄마에게 가장 큰 위로라는 걸 나도, 너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놀이터에서 인형에게 침대를 만들어 준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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