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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코끼리 Jan 03. 2022

넌 항상 내 생각만 하는 거야?

수시로 받는 러브레터(from 딸)

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와서 유난히 자기 가방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보통은 불편해 보여서 내가 들어주고는 하는데 굳이 아니라고 자기가 메고 간다고 하는 날은 뭔가 소중한 만들기를 해온 날이다. 그런 날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랑하듯 가방에서 하나씩 꺼내기 마련인데, 내 생애 이렇게 많은 러브레터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게 결국은 지나가는 시절의 한 때라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서 글로 남기기로 했다. 

사실 아이는 아직 한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래서 삐뚤빼뚤 써온 엄마 사랑해요 라는 글자는 선생님이 써주신 걸 보고 따라 쓰는 건데, 접힌 종이를 펼치니 안에는 마스킹 테이프가 잔뜩 편지 줄글처럼 붙어 있었다. 제법 편지답게 뭔가 꾸며오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특해하고 있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 빨간색은 사랑하는 엄마라는 뜻으로 붙인 거야.

나: 아, 그랬구나, 그럼 여기 반짝이는 예쁜 초록색은 뭐야?

아이: 응, 그건 엄마를 엄청 사랑한다는 뜻이야

나: 그래? 그럼 여기 제일 많이 붙인 초록색은 무슨 뜻이야?

아이: 응, 그건 엄마를 대박 사랑한다는 뜻이야!!


얼마나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활짝 웃는지 듣는 내내 가슴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이번엔 책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그 책 안에도 여전히 아이의 사랑고백이 가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과 그 안에 그려진 그림도 엄마와 강아지 그림이었다. 사실 그림을 잘 못 그리니까 그림 그리는 활동 힘들어하는데, 굳이 굳이 나를 그려왔다는 게 너무 감동이었다. 이렇게 감동받고, 벅차고 행복하다가도 불시에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분노하는 엄마의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매일 사랑한다고 하는구나. 나보다 한참 작은 네가, 나보다 더 크게 사랑하는구나. 그렇게 나는 또 반성을 해야 했다. 


나랑 싸우고 등원한 날에도, 어김없이 유치원 가방에서 꺼내 든 사랑한다는 편지와 만들기 하면서도 엄마 선물이라며 소중하게 들고 오는 너를, 엄마도 더 많이 사랑할게. 사실 이미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나 싶지만, 체력이 바닥을 찍는 날에도 엄마 안에 가득 차고 흐르는 게 사랑고백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널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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