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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코끼리 Mar 13. 2024

아이와 여행을 떠난다면,

따뜻한 에세이 <어린이의 여행법>


<어린이의 여행법>은 아이들과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어린이의 여행법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걸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늘 그렇듯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달라진 시야를 가져다주었다.

  처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정해진 것 하나 없이 그저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 보고 싶다는 어린이의 소망 하나만 있다는 건 굉장히 막막한 일이었다.

  그나마 티켓팅을 하고 난 뒤엔 후련하고 행복했으나 짐을 챙기고, 집을 정리하는 과정은 내내 지루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바쁜데 참견하는 아이들이 버거웠다.


<어린이의 여랭법>

   이 책을 읽고 안 것은, 내가 버거울 수밖에 없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은 당연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란히' 함께 걷는다면 그건 내가 여행을 함께하는 일행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 일이었다.  

<어린이의 여랭법>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도 단박에 일어나 피곤한 기색 없이 공항으로 가는 내내 종알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공항에서 내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마냥 신나서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심지어 4시간이 넘는 비행에서도 생각보다 의젓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모습은 너무 뿌듯했고, 난기류로 기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만났을 땐 마치 놀이 기구를 타는 것처럼 신나서 까르르 웃던 모습은 덩달아 나도 웃게 만들었다. 그렇다. 우리의 여행은 이미 짐을 싸는 그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 순간 너희를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데리고 다녀야 할 존재로 생각한 것이 문제였을 뿐.

<어린이의 여랭법>

  책에서 엄마가 반복되는 힘든 상황들로 결국 무너졌을 때, 아이가 다가와 위로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야기한다.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작은 손이 다가와 위로해 주던 그런 따뜻한 순간들이.

엄마, 이거 엄마 거야.
아빠랑 카약 타다가 엄마 주려고 주운 거야.

  지나가다 예쁜 걸 보면 어떻게든 들고 와서 내가 좋아는 표정을 보고 싶어 잔뜩 기대하며 내미는 너의 작은 손이 내게 얼마나 감동인지 너는 모르지. 네가 들고 온 그 어떤 것보다 그걸 들고 온 네가 가장 귀한 것도 너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고 너에게 사랑받는 모든 순간으로 내 삶이 빛나고 있다는걸.  나는 그런 존재와 여행을 함께 왔다.

<어린이의 여랭법>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모든 책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다는 것도 너무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읽히지 않는 책도 있고, 대충 훑어보는 책도 있으며, 몇 번씩 정독하고 싶은 책도 있다.

  그러지 말자고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순간 올라오는 짜증을 덜컥 뱉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계속 책 내용이 맴돌았다. 내가 너무 엉망인 여행 메이트가 된 기분이었다.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른 후 아이를 안아주었다. 너를 슬프게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우리 함께 즐거우면 좋겠어. 딱 그렇게만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 내일 밤이면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 된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읽은 걸로 기억될까. 다시 읽고 싶고 계속 꺼내보고 싶은 그런 챕터로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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