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면 친구의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혼자서 놀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학원 버스를 바로 타곤 하기 때문에 놀이터에 올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다. 오늘은 마침 시간이 맞는 친구가 있어서 놀이터를 갔다. 3학년이 되어 첫 번째 놀이터였다. 같이 갔던 친구가 먼저 가고 나자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나도 같이 일어서고 싶었는데 아직 친구가 남아 있어서 아이는 조금 더 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30분 더 놀고 가기로 했다.
보호자가 있을 때와 아이들끼리만 놀 때의 아이들은 굉장히 다르다. 좋게 말하자면 자유롭고 걱정 많은 엄마의 눈으로 보기에는 흥분도가 높다. 그러다 보니 오늘 놀이터에서도 나는 조금 긴장한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30분이 이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갔다. 조금 여유를 찾으려고 일부러 중간중간 딴짓을 하면서 들썩이는 엉덩이를 붙여놓고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 아이가 자기 팔 길이보다 긴 나뭇가지를 위로 치켜들고 어떤 남자아이를 잡으러 달리는 걸 봤다. 불안불안 눈으로 보았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 내가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했다. 근데 그 여자 아이가 같이 놀던 친구라서 불안감만 커졌다. 잠시 후 보니 쫓기던 남자아이가 반대로 나뭇가지를 들고 그 여자 아이를 쫓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간을 보니 약속한 시간이 5분 정도 남아있었다. 근데 잠깐 시간을 확인하느라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보니 아이가 자기 팔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래도 엉뚱하게도 가만히 있던 내 아이가 맞은 것 같았다.
시간이 되어 집에 가는 길 아이에게 물었더니 팔을 맞은 게 맞다고 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휘두른 애는 따로 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던 애가 피해를 보니 화가 더 많이 났다. 소매를 걷어보니 심하게 부딪힌 건 아니었지만, 붉게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정도로 그쳤으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이게 다음에도 다행인 수준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조심을 시켜야 했다.
혹시 위험하게 뭔가를 휘두르는 친구가 있으면, 그 근처에 있으면 안 돼. 적당히 피해야 돼. 갑자기 피하는 게 불편하면 자연스럽게 엄마한테 와서 물을 마셔.
솔직히 말하면, 제일 편한 방법은 그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내가 해주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다. 나는 크는 동안 '쟤랑 놀지 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런 말을 하고 싶은 상황이 올 때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지나칠 정도로 거친 친구가 있을 때는 그저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하려고 하고, 아이 스스로 놀이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 놀겠다고 말할 뿐이다. 나도 여전히 관계가 어렵다. 아이가 자랄수록 관계는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건 아마도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것처럼.
아이가 큰다고 육아가 편해지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도 친구 관계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늘 가져다준다. 작은 오해로 큰 갈등이 시작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도 있다. 서로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별 문제가 아니었던 일들이 갑자기 크게 기분이 상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십수 년을 알고 지낸 사이가 갑자기 절교하게 되는 일은 학생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나는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지기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의 방법이 없는 아이들이 다시 문제를 만나면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아이들의 불편한 마음을 공감해 주고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자.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더라도 끝마무리는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목표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전을 용이하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는 등 부모의 개입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작고 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이들의 회복력과 정서적 안정성을 지켜낸다.
-출처: <빅브레인>
하루 24시간 내내 아이 옆에 붙어 있는 것도 불가능하고 모든 위험요소로부터 아이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면 내가 하는 육아에 졸업은 없고, 아이의 삶도 아이의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나의 삶을 사는 게 될 것이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고 목표를 세우고 성취할 줄 알아야 하며, 문제가 생겼을 땐 직접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선택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그 수많은 과정 속에서 아이는 상처받고 좌절하고 주저앉아 울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거쳐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지혜로워지면서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니, 육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아이를 기다려주는 시간인 것 같다. 내가 해 주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지만, 느리고 돌아가고 또 때로는 틀린 답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늘 또 배운다. 그래도 솔직히, 안전하게 노는 친구들이랑만 놀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