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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는 것과 화를 내지 않는 것

by 엄마코끼리 Mar 18.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얼마전까지 날씨가 제법 풀린 듯 해서 온 식구들 패딩을 다 빨아서 정리를 했다. 정리하고나니 제법 부지런히 봄을 준비한 기분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날이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 한 겨울처럼 눈이 쏟아졌다. 아침에 몇 번씩이나 울리던 눈이 많이 왔으니 출근길에 조심하라는 안전문자가 꼭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왠지 시작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날씨때문인지 오늘도 1호는 일어나지 못했다. 30분을 깨우니 그제서야 짜증을 내면서 양치를 하러 갔다. 양치하면서도 울고 씻고 나와서도 잔뜩 골이 난 채였다. 시간이 촉박해서 대충 흘러내리지 않는 정도로만 머리를 묶고 집을 나섰다. 


  바닥에 쌓인 눈은 녹아서 비가 쏟아진 것처럼 길바닥에 물 웅덩이가 되어 고여있었다. 게다가 걸어가다가 나무에 쌓여 있는 눈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부지런히 피하며 걸어봤지만, 두어번 머리에 옷에 눈덩이를 맞아야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짜증을 내며 간신히 잠에서 깼던 어린이는 그 축축한 눈덩이를 맞아도 까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아침에 그렇게 짜증을 내며 골을 냈어도 어느새 발걸음이 가볍고 표정이 밝다. 아이의 기분 전환 속도는 아무리 경험해도 놀랍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의 짜증에 내 기분이 상해 휘둘리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출처: 픽사베이출처: 픽사베이

  나는 어른인데, 아이의 짜증에 함께 유치하게 시비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못 넘기고 결국 함께 짜증내고 시비를 걸고 분노를 터뜨리고 나면 늘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아이는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헤실헤실 웃으며 신나는데 내 안에는 여전히 단단히 꼬여있는 분노가 고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도대체 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분명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났어도 그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잘 넘기면 아이의 기분이 풀렸을 때 나도 같이 웃을 수 있었다. 아, 결국 육아에서 중요한 건 엄마의 감정조절인가보다 하고 다시 한 번 화를 내지 않는 하루를 다짐했다. 


  그랬는데, 언제나 육아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하길래 둘 다 양치를 하고 잘 준비를 빨리 하고 오면 하나 보여줄 수 있지만 더 늦으면 시간이 늦어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랬는데 동생은 양치를 하러 갈 생각이 없었고, 누나는 빨리 양치하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나가 고른 거 하나 보는 동안 양치 안 하고 같이 보다가 자기도 하나 봐야한다고 드러누워 절규할 2호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둘 다 준비가 된 게 아니라면 볼 수없다고 하니 누나가 드러누워 울기 시작했다. 


  아, 오늘은 어쨌든 누구 하나 드러누워 절규하는 날인가보다. 종일 참았던 짜증과 분노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게 화를 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버릇을 고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냥 참았던 화를 터뜨릴 수 있을 뿐, 아이와 나의 감정이 상하고 둘이 싸우는 동안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그저 안 된다고 말하며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볼 수 있다고 했으나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일찍 일어날 자신은 없었나보다. 못 일어난다며 울고 불고 난리가 한 차례 있었다. 그러다 겨우 잦아든 울음을 정리하고는 동생이랑 둘이 씻으러 들어간다. 


티비 보고 싶었는데!


   어느 새 밝아진 목소리로 동생이랑 이야기 하는 게 들렸다. 그래, 화를 참기 잘했다. 아까 화를 냈다면, 아침 내내 참았던 게 터지면서 그냥 매번 화 내는 게 차라리 나았겠다 싶게 분노가 터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씻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으니 불같이 타오르며 들끓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사그라든다. 화 내기 전에 심호흡 열 번만 하면 된다고 했던 게 이런 거였을까. 화를 안 내는 게 아니라 그저 묵혀뒀다가 복리이자까지 붙여서 아이에게 내질렀던 지난 날이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오늘은 잠자리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말할 때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하는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겠다. 더 많이 안아줘야지. 근데 너네 다 씻은 거 같은데 언제 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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