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보다 2년 정도 늦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2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등원하고 나서나 하원하러 가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틈마다 원장선생님을 만나면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육아 고민을 상담하곤 했었다. 그때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였다. 큰 애는 2살 때 데리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전시회를 가도 힘들지 않았다. 손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안내선 바깥에서 봐야 하는 거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더라도 힘든 아이가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을 피하면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종종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곤 했었다.
그러다 2호가 태어나고 날마다 새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린이집에서는 너무 바르게 생활을 잘한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 말로는 밖에서 질서를 지키고 사회생활을 하느라 애가 힘들어서 집에서 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부딪히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이 통하게 되기까지 훈육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바뀐 태도는 2호에게만 적용됐다.
1호를 향해서는 여전히 단호하고 무서운 엄마의 모습으로 훈육을 하고, 감정적으로 진정이 되지 않는 2호를 향해서는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기다려주는 모습으로 훈육을 한 것이다. 게다가 두 아이의 다툼은 누군가 먼저 멈춰야만 그칠 수 있는 상황이 대부분인데 말이 더 통하는 1호에게 먼저 멈출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1호 안에 쌓이는 건 억울함이었을 것이다. 그걸 다 알면서도 늘 큰 애를 말리고 있었다. 2호의 폭발하는 감정을 인내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1호에게는 인내심이 발휘될 기회가 없었다. 그저 자꾸 혼나기만 하고 아이는 짜증이 나고 울음이 나는 그런 날들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2호가 유치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장난감 우쿨렐레로 배운 자세를 나름 연습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큰 아이가 자세가 그게 아니라고 지적했고 둘째는 자기가 배운 대로 한 걸 누나가 아니라고 하니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처음 배우는 거라 네가 알던 것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해주었지만 1호는 자기가 본 것을 기준으로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라고 말했고 2호는 절규하기 시작했다. 내 인내심이 닳아가고 있었고, 나는 또 1호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며 잘 시간이니 양치를 하고 오라고 했다. 그 순간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빨대를 집어던지고는 양치를 하러 갔다.
아이가 양치를 하는 동안 나는 솟아오르는 짜증을 다스리며 기다렸다. 아이가 여전히 짜증이 가득한 상태로 양치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 잠깐동안 나는 짜증이 제법 가라앉은 상태라서 화를 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왜 빨대를 던졌는지 말해봐.
그리고 네가 던지고 나서 기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해.
내가 요구하는 대답은 아이의 감정 표현이었다. 어떤 감정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로 표현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입을 닫고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훈육을 시작한 시간이 밤 11시였다. 그래도 나는 기다렸다. 20분이 지나가도 아이는 입을 닫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할 뿐이었다.
짜증이 열 번 난다고 해서 열 번 집어던질 수는 없어.
어른이 돼서도 한두 번쯤 그럴 수는 있겠지만,
크면서 열 번을 던지다가 그다음엔 열 번 중에 8번, 5번 줄여가야 해.
그러려면 기분 나쁜 표현을 말로도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서 엄마가 지금 기다리는 거야. 지금 말해야 다음에도 말할 수 있어.
내가 화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아이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내가 먼저 읽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동생 편만 들어주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억울했냐고 물었더니 참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저 짐작만 하던 아이의 마음을 내가 읽어주었을 때, 아이는 자기 마음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거였을까. 울음이 커지기 시작하던 아이를 안았다.
엄마가 화를 낼 때는, 그냥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할 게 있어서 알려주고 싶은 거야.
너는 엄마가 그냥 말을 하면 다 알아듣고 고칠 수 있는데 동생은 그게 안 돼.
그래서 어떻게 하면 들어야 할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안아달라고 했어. 그리고 안아주니까 진정이 되고,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됐어.
그래서 네가 억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엄마가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다짐하는 이유는 너야.
너도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면, 안아달라고 해. 그럼 엄마가 안아줄게.
품 안에서 울던 아이는 곧 진정이 되었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맥락과 상관없이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안아달라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지만 아이 나름대로 엄마가 정말로 자기가 말할 때마다 안아주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근데 꼭 가스불 앞에서 요리하고 있을 때라든가 차로 이동 중이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때 등 바로바로 안아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뜬금없이 요청을 한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일단 멈추고 먼저 안아줘야 하나보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천천히 배워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일부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또 한 번 성장할 시기가 되었나 보다. 10살도 아직 어리다는 걸 새삼 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