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유명인의 죽음을 접했다. 당시 발라드엔 관심이 없었으나 우연히 저녁 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멜로디와 목소리에 끌려 알게 된 '가수 서지원'. 그냥 미국에서 살다 온 잘생긴 형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면 '양준일 / G 드래곤' 의 느낌이 있는 90년대 유망주였다.
활동 기간이 짧았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그건 본인만 알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와 당시의 상황. 팬은 아니었지만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학생으로서 아직도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는 아티스트다.
고운 미성과 외모를 갖춘 실력파 아티스트
1집 - Seo Ji Won (1994)
어릴 적부터 '피아노, 첼로' 등을 배우며 음악 재능을 키워나갔던 그는 노래 실력도 뛰어났다. 곱상한 외모에서 나오는 미성에 빠져들지 않을 여성이 있었을까.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의 강렬한 댄스 그룹에 빠져있던 여자 친구들도 나이차가 많았던 '신승훈' 보다는 '서지원'의 발라드에 빠졌다. 공개 오디션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 티켓을 잡은 그는 한국으로 귀국. 그렇게 쌀쌀한 가을에 신세대를 상징하는 베레모와 산뜻한 복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각종 연예 잡지를 통해 여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 노래도 좋았지만 성실하면서 수줍은 모습의 매력은 그를 SBS 의 예능 프로 MC 로까지 활동하게 만들었으며, '점프 챔프' 라는 예능 드라마의 추억이 떠오른다. 댄스 그룹이든 발라드 가수든 대부분 20대 중반 이상이었던지라 10대 또래의 발라더라는 점에서 더 정감 갔을 거고, 첫사랑으로 손꼽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잡지 모델로도 꾸준했으니 말 다했지.
약 4개월 간의 짧은 트레이닝을 거쳐 발표한 1집은 풋풋한 10대 아티스트의 느낌이 가득하다.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편안한 목소리는 꽤 괜찮은 수록곡들과 함께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하여 직접 원하는 스타일의 아티스트 작곡가를 찾아가 곡 의뢰를 하며, 홀로 귀국한 외로운 상황 속에서도 음악적인 네트워크도 잘 형성했던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데뷔곡 <또 다른 시작> 은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 곡인데, 당시 발라드 무대엔 무용단이 백댄서로 활약했던 것과 달리 댄서들이 춤을 춘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다와서인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의 무대는 10살인 내가 봐도 '저 형 멋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밝은 이미지의 그는 주변 평판도 좋았으며,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가수라고 하면 무조건 딴따라 라며 삐딱하게 바라보던 어른들도 다른 평가를 했다. 착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1집은 1위까지는 못 했으나 큰 인기였으며, 90년대의 감성을 듬뿍 담은 앨범을 추천한다.
홍블러's PICK : 90년대 감성을 원한다면 취침 전, 이어폰을 꽂고 전곡 감상 추천!!
목소리로만 접할 수 있는 아쉬움
2집 - Seojiwon 2, Tears (1996)
95년 가을에 나온다던 2집은 그의 건강 문제로 연기되어 96년 1월에 발매되었다. 1집과는 달리 아픔 가득한 발라드 <내 눈물 모아> 로 컴백 예정. 지금도 그의 대표곡으로 불리며, 당시 사망과 엮여서인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노래가 그의 데뷔곡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앨범 발표를 앞두고 그는 95년 연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떠나기 전, 동료들과 소중한 자리도 가졌었지만 큰 내색은 없었다고, 그러나 계속해서 '내가 없어도 괜찮겠냐는 등' 의 일부 불안한 질문이 그저 2집 부담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했다는 지인들의 인터뷰.
타이틀곡 <내 눈물 모아> 는 지금은 예능 프로로 그냥 웃긴 아재로 알고 있겠지만 그룹 '베이시스' 의 멤버 '정재형' 의 곡이다. 그의 죽음 이후, 이슈 몰이도 있었겠으나 노래가 워낙 좋은지라 공중파 3사에서 1위를 차지. 그러나 그의 무대는 뮤직비디오와 동료 가수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2집은 특히 그의 자작곡이 돋보인다. <이별만은 아름답도록>, <너와 함께 할 거야>, <사랑, 그리고 무관심>, <사랑의 기초> 등. 2집 또한 전곡을 들어야 할 명반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생활도 없는 데다 따라오는 인기에 어쩔 수 없이 강행해야 했던 스케줄 소화, 어린 나이에 얻은 큰 성공으로 2집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1집과 달리 음악에만 전념하며 아티스트로 성장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앨범 재킷에도 쓰여 있듯 아티스트로써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주길 바랬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공백 기간 동안 떠오른 댄스 그룹들의 르네상스 시대가 가수의 근본인 '음악' 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을 것이며, 이는 결국 그의 마지막 선택 배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망 이후 많은 동료와 팬들의 추모와 주체 못 할 감정을 두고도 소속사의 대처는.. 차마 글로 못 쓰겠다..
홍블러's PICK
내 눈물 모아, I Miss You, 이별만은 아름답도록, 첫눈이 오는 날, 76-70
그의 사망 이후, 미발표 곡들과 기존 수록곡들을 짜지기 하여 발매한 이상한 형태의 3집. 추모 앨범이라 하기에도 뭐하고, 당시 팬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내 친구들은 그래도 오빠의 신곡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했지만, 더 나이 많은 분들은 분노하지 않았을까.
90년대 중반의 풋풋한 유망주 아티스트, 서지원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본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계절 밤에 들어도 항상 포근하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