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Apr 22. 2021

힘 없이 추락한 불신자들의 최후 - 불신지옥

갈수록 나아지리라 믿었던 결말은 힘없이 추락

'이용주 감독' 이 본격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총 3편이며 각각 장르가 완전히 다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시나리오는 입소문을 탔으나 제작 문제로 나중에 개봉된 <건축학개론>, 얼마전 개봉하여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서복>. 그의 첫 데뷔작인 <불신지옥> 은 공포다.


공포로 쫄깃하게 만들던 사람이 3년 후엔 멜랑꼴리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다룬다니 누가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보였으나 어쨌든 <건축학개론> 은 대박이 터졌고, <불신지옥> 도 역주행을 타나 싶었으나 의외로 이 작품을 본 이들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나는 공포 장르에 워낙 둔감해진지라 무섭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포 매니아들 사이에선 수작으로 불리는 영화 <불신지옥> 은 어땠을까.



STORY

알바 병행 등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희진' 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동생 '소진' 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경찰에선 단순 가출로 판단하며 쉽사리 조사에 나서려 하지 않아 '희진' 은 답답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엄마는 경찰 수사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계속 교회에만 나가며 기도해야만 '소진' 이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는 '희진' 주변에 잠시 마주쳤던 이웃 주민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고, 그 중엔 '소진' 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계속되는 사건에 경찰 '태환' 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긴 하나 말이 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실마리를 잘 잡히지 않고, 주민들이 '소진' 을 상대로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가 밝혀지게 되는데..



공포를 가장한 수사물

헐리우드나 다른 한국 공포 영화처럼 주인공이 한 곳에 갇힌채 계속해서 깜놀하는 연출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잔잔하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아마도 무섭다고 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파트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리가 살짝만 눈 돌리면 마주칠 듯한 누군가의 시선, 옆집 소리, 지하실과 옥상의 비밀을 뻔히 예상되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


그리고 배우 '심은경' 의 귀신 들린 연기는 그녀의 필모 중에서도 손 꼽히는 명연기일 것이다. 대사와 출연 분량이 많지 않으나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캐릭터이며 그녀 또한 2년 후 출연하는 '써니' 와는 완전 다른 이미지라 뛰어난 연기력을 증명할 수 있다.

영화 <불신지옥> 은 공포물이라기 보다는 수사물에 가깝다. '희진' 이 싸워야 하는 특정적인 대상은 없으며 계속해서 '왜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어디로 갔느냐' 를 조각을 하나씩 모아나가며 진실을 파헤치는 전개이기 때문이다. 공포 장르는 그저 이야기의 분위기에만 관여할 뿐 본격적인 공포 장르라 하기에 나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꽤 답답하다. '희진' 에게 어떤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생긴 힘을 통해 접한 사실과 확인을 통해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관련자들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캐물어 다음 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스스로 위기에 직면하여 풀어나가기 보다는 그저 누군가의 '카더라 통신' 을 접하는 느낌이라 루즈했다.

이미 중반부가 되면 엄마 방의 비밀과 함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짐작이 되면서도 이후에 '희진' 에게 어떤 독보적인 능력이 부여되어 일을 크게 벌리기 보다는 조용히 진실에 마주해가는 수사물 적인 요소는 나에겐 공포감을 반감 시켰으며 심하게 말하자면 굳이 그 짧은 진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빙빙 돌아서 와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에 다다른다.



믿음을 갖지 못한 현실 자체가 지옥

<불신지옥>. 누군가에겐 굉장히 거부감이 드는 단어일 것이다. 개봉 당시 일부 기독교 측에서는 종교 비하가 아니냐는 반론도 있었다 하는데 이쪽 분야는 내가 전혀 모르니 넘어가도록 하고. 작품 속 사람들은 모두 위기와 혼란스러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것을 절대신으로부터 구원받으려 한다. 너무나 맹신적인 사고에 결국 비극적 사건이 벌어직 되고 이후의 그들은 더욱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며 각자만의 최후를 맞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같은 아파트 이웃이면서도 평소 교감을 나누긴 커녕, 공동 목표를 가지고 사건에 개입하면서도 진행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믿지 못한다. 오로지 내가 안전하느냐, 구원받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가 아니라 절대신을 통해서만 세상을 안고 살아가려는 마음. 이러한 불신감이 가득찬 아파트 그 차제가 지옥인 것이며, 그로 인해 왜곡된 종교관까지 생겨나는 것. 교회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딸이 성령을 입었습니다. 구세주에요
성경을 그렇게 멋대로 해석하시면 안 됩니다.


영화 <곡성> 의 명대사 '뭣이 중헌디' 와 마찬가지다. 정작 현실에서 봐야 할 것, 잡아야 할 것이 뭔지를 모른채 자신의 해석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위험. 이것이 사건 발생 이후, 엄마의 잘못된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영화는 가족끼리의 현실 대책이 논의되었다면 해결되었을 결론으로 마무리 된다.




무섭지는 않은데 배우 '심은경' 의 초창기 명연기가 보고 싶다면 추천. 그리고 배우 '남상미' 는 과하지 않고 잔잔함을 유지했기에 동생을 애타게 찾으며 엄마와의 갈등에서 고뇌하는 언니 역할을 잘 맡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으나 공포를 잔잔하게 정답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어내는 것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갈수록 나아지리라 믿었던 결말은 힘 없이 추락 (★★)


아지리라 믿었던 결말은 힘없이 추락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리 속 신파의 기억만 남다 [내일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