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를 실사화한 작품 중에 좋은 평가를 받는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중에 하나가 '바람의 검심' 일 것이다. 원작의 메인 스토리 흐름대로 파트를 구분하여 제작했기에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고 액션씬이 끝내주는 작품. 아마 이번주 일본에서는 마지막 작품 <바람의 검심 최종장 PART 1> 을 개봉한 걸로 아는데, 9월 정도에 PART 2가 나옴으로써 마무리 된다 한다.
과연 한국에서는 언제쯤 개봉할지, 개봉이나 할 수 있을런지 모를 이 작품을 보기 전 꼭 봐야 하는것이 있다. 애니에서도 명작이라 불리는 <바람의 검심 추억편>.
STORY
일본 막부 말기. 온전한 시대를 이루기 위해 전란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이 중엔 '유신지사' 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큰 뜻을 가진 남자 '카츠라' 는 어쩔 수 없이 흘려야만 하는 피의 무대에 검술가 '켄신 (검심)' 을 영입하고, 그의 명성은 올라간다. 어느 날, 어느 관직자를 살해하던 중 그의 호위병 한 명도 죽이게 되는데 곧 결혼을 앞둔 그는 절대 죽을 수 없다며 발버둥치다 '켄신' 의 왼쪽 뺨에 일자 상처를 내고 죽는다.
비 내리는 밤. 자객의 습격을 이겨낸 '켄신' 은 현장을 목격한 여성 '토모에' 를 만나게 되고 충격에 쓰러진 그녀를 데려온 이후, 그녀는 유신지사의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신선조' 의 활발한 활동으로 상황은 곤란해지고, '카츠라' 의 명령에 따라 두 사람은 부부로 위장하여 산 속에 숨어 살게 되는데...
용서와 속죄의 검객
<바람의 검심 추억편> 은 원작에서는 중후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켄신의 과거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각색한 작품이다. <바람의 검심 최종장> 에서는 켄신의 아내였던 토모에의 남동생, 에니시가 복수를 위해 쳐들어오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바람의 검심 추억편> 은 영화 감상 전. 아니, 그냥 하나의 작품으로라도 꼭 보라고 추천하고픈 영화다.
가족도 없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힘 없이는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없다는걸 깨달은 어린 켄신. 산 속에 은거하며 스승을 통해 배운 검술로 그는 세상을 구하고 싶어한다. 그의 적은 누구인가. 세상의 흐름을 접하며 켄신 자신도 평화를 이끄는데 걸림돌이 되는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며, 평화를 가져오자는 목표는 모두가 같지만 집단 별로 운영 형태는 다르다.
켄신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몸을 맡겼을 뿐. 스스로 세상을 바꿀 힘이 없던 그는 그 힘을 가진 남자 '카츠라' 에게 합류한 것이고, 그저 뒤에서 어려운 일들을 대신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럴려고 검술을 배웠던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그 시대는 언제 도래하는가. '토모에' 는 계속 질문한다.
언제까지 사람을 벨 건가요, 사람을 베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니 말도 안 돼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저 검 하나로 윗사람의 방향에만 맞추어 살아온 그는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렸고, 의도치 않게 찾아온 위장 부부 생활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토모에' 의 말대로 검을 들고 있지 않을 떄의 그는 너무나 상냥하며, 이처럼 농사 짓고 평온하게 생활하는 평범한 남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누가 그에게 검을 쥐어주어 피 비린내 나는 지옥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는가. 그건 켄신 본인이다.
계략으로 인해 켄신에게 접근한 토모에지만 약 1년을 함께 생활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자신의 약혼자가 아니라 켄신이, 아니 그 이 외의 많은 이들이 시대의 탓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을거라는 납득. 복수를 위해 접근한 자신을 아무것도 모른채 오히려 지켜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흔들린다. 모든건 시대의 탓.
내막이야 어쨌든 진심이 통했던 두 사람은 의도치 않게 한 쪽이 한 쪽을 지켜주고,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연애를 1년은 해봐야 안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자연과 자신들의 감정 자체에만 모든 걸 맡긴 두 사람의 유대감은 강했다. 강력한 원한이 담긴 상처는 풀릴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소문. 쉼 없이 흐르는 뺨의 피, 상처를 용서하기 위해 토모에가 그 위에 X자로 상처를 긋는다.
그렇게 엮여있던 원한은 풀어주고,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담아 남긴 상처를 갖고 켄신은 속죄의 길을 걷기로 한다.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는 지옥으로 뛰어들고, '칼잡이 발도재' 라불리며 전란 종료 후 사라진다. 평생을 확고한 방향 없이, 권력자에게 맡기며 살아온 살인귀의 인생을 종료케 만들어준 연인과 자기 성찰.
<바람의 검심 추억편> 은 원작을 모르더라도, 살인 병기로 이용되다시피 하던 남자가 용서받고, 속죄의 길로 나아가는 첫 이야기로써 이후의 장대한 스토리의 시작이다.
원작과 다른 완전히 다른 무거움
원작, TV 판 애니메이션은 소년 만화 장르 답게 밝고 가볍다. OVA 4부작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앞의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소년 만화의 특성은 없고, 좀 더 잔인하며 처절하고 우울하며 어둡다. 마음 놓고 웃고 떠들기는 힘들던 정치 싸움. 시대의 긴장감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다른 설정을 취한건 신의 한수 였으며, 난 오히려 이렇게 어두웠던 분위기가 평화의 시대에서 펼쳐지는 밝은 활극과 더 자연스러웠다 생각한다.
액션씬이 그리 많이 나오진 않는다. 그러나 화면 색감과 연출이 너무 좋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듯 뿌연 느낌이 가득 들어간 자연 풍경, 그리고 인물 묘사. 또한 인물의 심리에 따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은 물론 상징적인상황을 짧은 컷으로 삽입함으로써 제대로 된 정극을 보는듯 하다.
사게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자연 묘사는 명화 그 자체다. 또한 OST 는 너무나 비장하면서 처연하여 작품의 어두움을 한껏 살려준다. 가장 좋아하는 엔딩곡 'Quiet Life' 를 포함하여 전곡을 추천하며, 한 남자의 비극적인 과거를 깊게 느낄 수 있다.
비가 오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보면 너무나 좋은 명작. 각색은 되었으나 독립적으로도 충분한 완성도를 가진 이 작품을 본 후 언젠가 보게 될 영화 <바람의 검심 최종장> 을 본다면 더욱 와닿지 않을까. 비교는 피할 수 없겠지만, 이미 영화 자체가 인정받는 작품이기에 믿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