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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28. 2021

청정하지만 꽤나 밋밋한 기다림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저 맑기만 해도 지치게 마련


주인공 두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충분했던 영화 <동감>. 그 외에 어떤 사물을 계기로 이어지게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는 깨끗하고 맑은 아날로그 감성을 제공하는 영화로써 한국 정통 멜로 영화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 중간의 접힌 부분은 처음엔 누군가가 실수로 올린건가 했는데 실제 컨셉이 그러했다. 서울 남자와 부산 여자가 주고 받는 감성 가득한 편지지의 감성.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는 어땠을까.



STORY

삼수생 '영호' 는 갑작스레 초등학교 친구 '소연' 을 떠올린다. 친구의 도움으로 주소를 알게 되어 편지를 보냈는데 이럴수가, 실제 답장이 온 것이다. 아무것도 질문하지 말고, 만나자 하지도 말고 라는 조건을 단 채로 주고받는 편지. '영호' 는 기쁘지만 그에게 관심있는 삼수생 친구 '수진' 은 찝찝하기만 하다.


그러나 사실 답장은 '소연' 의 동생 '소희' 가 보낸 것이다. 소연은 지병으로 죽을 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냥 연락을 차단하면 될걸 그 인연을 편지로 이어갔던 소희의 감정이 그대로 영호에게 전달 된 것이다. 이제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20대의 두 사람이 세상에 부딪히는 질문들을 풀어나가는 전개를 맞는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의 두드러지는 점은 깨끗한 영화라는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기 위해 일상적인 모습만을 담았으며, 두 사람 모두 도시에서 생활함에도 복잡한 모습이 아니라 고요한 도시의 모습을 담아냈다. 헌책방, 학원, 어딘가의 건물이나 조용한 길거리 등.


또한 소품이 예쁘다. '우산 공방' 을 운영하는 영호의 특기는 여성들이 흠뻑 빠질만한 아름다운 우산을 만들어내고, 선물로 제작한 강아지 모양의 열쇠 고리. 그 외에 인물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포근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평범함을 가득 갖고 있다. 극적 전환을 끌어내기 위한 갈등도 없다. 실제 만나지도 않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함꼐라기 보다는 다른 상황을 맞고 있는 두 남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 그렇기에 리듬감과 높낮이가 없어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를 잔잔한 BGM 과 대사로 보조하는 듯 하다.


너는 별이고, 소희는 비 같아. 별은 빛나지만, 비는 위안을 주거든 / 내가 사는 별에선 비가 안 내릴거 같아?




건강한 맛만 보여줘서는 부족한 시대

성장 멜로 영화라 해서 반드시 두 남녀의 감정 교환이나 갈등이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거 영화 <동감> 은 두 사람의 감정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는 조연이 있음으로 독자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리듬감이 느껴졌다. <건축학개론> 은 현재의 어떤 상황으로부터 떠올리는 과거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시간 차이에 따른 이질감도 없었다.


그러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는 이 부분을 놓쳤다. 현재 (2011년 예상), 그리고 과거 1 (2000년대 초중반), 과거 2 (90년대 초등학교 시절) 을 마구 오가는 전개는, 그 구간을 오가는 시점과 상황이 딱 와닿지 않으며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기에 집중해서 보면서도 이야기의 앞뒤를 조각 맞추기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런데 집중이라고 표현은 했으나 집중은 잘 될까?

앞서 언급했듯 리듬감이 없다. 이 작품은 둘의 관계 외에 '취업, 가족' 등의 20대가 겪을만한 고민을 동시에 다룸으로써 멜로에만 치중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조연들의 활약이 없으며, 두 사람의 혼자 고민하기만 쭈욱 뻗은 전개는 '기다림의 이야기' 라는 메인 키워드를 가진 영화임에도 너무나 질질 끈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애초에 영호가 소연의 연결 고리가 약하다. 그저 운동회에서 잠시 손수건을 넘겨줬고 마음이 생겼을 뿐. 어째서 영호는 그렇게 소연의 연락에 매달리는지 시발점부터 명확하지 않으니 둘의 멜로는 기대하지 못했을 뿐더러 각자 소식은 주고 받되 결국 이 영화는 함께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 에 그치고 말았다. 약간의 조미료만 넣었다면 좋았을텐데, 그저 건강하기만 해서는 기억에 오래 남을 멜로가 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실체를 기다리며...

대체 왜 영호는 소연을 기다리며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지. 마지막 반전을 감안해도 충분히 주고 받을 이야기가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기에 몇 년을 혼자 연말에 기다렸던 영호의 모습은 순수하다는걸 떠나서 답답하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영호의 친구 '수진' 은 매력적이다. 당돌하고, 리드 잘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항상 함께 하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인연을 택하기 보다는 그저 어릴 적 잠깐의 인연에 매달린다.


'기다림의 이야기' 라고 영화 처음과 끝에 영호는 말한다. 기다린다는건 무언가를 생각하고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대체 영호가 원했던건 뭘까. 사랑과 진로 문제 등 여러 고민 거리를 작품 속에 애매한 비중과 무게로 담다보니 결국 <비와 당신의 이야기> 는 어떤 이야기를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의문이 든다.



오랜만에 청정한 느낌으로 힐링된건 좋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계속 혼자서만 질질 끌다보니 이미 영화 중반이 되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주려 했던 건 이해하지만 조금은 요즘 시대에 맞는 요소를 가미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아날로그 감성에 공감할 나 같은 시대의 사람들도 질리고 있으며, 궁금해할 MZ 세대는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관심 갖기 힘든게 아날로그다. 이미 우리는 10년 전부터 아날로그 붐이 일면서 많이 접해왔기에..


https://youtu.be/GIJ_9euJR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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