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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30. 2021

역할과 유대 부족으로 파탄난 가족 [바람난 가족]

꼭 그렇게 노출로만 끌어내야 했을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2003년,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 아침마다 전철역에서 'METRO (메트로)' 라는 조그만 일간지를 무료로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창 호기심 많은 때라 당시 영화 광고 중에선 <바람난 가족>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등의 포스터를 자주 봤는데, 워낙 자극적이라고 홍보를 했길래 수위가 어느 정도 일지 궁금했지만 막상 보고 나니 별거는 아니었다는 추억이..


영화 <바람난 가족> 은 상류층의 삐뚤어진 관념과 인간 관계를 꼬집어내는 임상수 감독의 작품으로써 오랫동안 영화계의 공백기를 가졌던 윤여정 선생님을 다시 소환시키고, 떠오르던 명배우 '황정민, 문소리'등을 캐스팅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노출 씬으로 말이다.



STORY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영작 (황정민)' 은 아내 '호정 (문소리)' 몰래 섹스를 즐기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호정은 자신에게 관심 갖는 옆집 고등학생 '지운 (봉태규)' 에게 성적으로 유혹한다. 잘 지내는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비밀을 갖고 있는 두 사람. 이들에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 '창근 (김인문)' 이 있으며,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되 또한 다른 남자와 섹스를 즐기는 어머니 '병한 (윤여정)' 이 있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파탄난다. 그것이 영화의 전부다.



빛 바랜 사실적인 이야기


영화 <바람난 가족> 은 리듬감을 가진 작품은 아니다. 모든 씬이 롱테이크샷으로 실제 그 현장에서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며, 이야기 내내 탁하고 어두운 색감이 가득하기에 칙칙한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제목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순 없다. 각자에게 생긴 인연과 꼭 끝까지 가야만 하는 애틋한 사연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저 그들은 욕망/소통 부족으로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개봉 당시로써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맞다. 많은 갈등이 있었음에도 결국 화합하는 아름다운 결론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죽을 사람은 죽고 떠난 사람은 떠났고, 둘은 합치지 못 했고. 그래서 어쩌다 그릇된 선택을 하여 안타까운 가족이 되었는지, 사실적인 이야기라 덤덤하면서도 쓸쓸하게 마무리 되었다.



역할과 소통의 부재로 인한 파탄


이 가족의 문제는 구성원으로써의 역할과 소통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남편 영작은 인권 변호사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직업이다. 그러나 정작 집에서는 몰래 바람을 피우고, 아직도 청소년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기 일쑤다. 아버지가 피를 토할 때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처리하기 보다는 곧바로 아내를 부르고, 때때로 아직 자기는 덜 성숙한거 같다고 내뱉은 말에서 그의 실질적인 모습은 아직도 성장 중. 가장으로써의 든든한 역할은 부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겉은 멋있는데 속은 그렇지 않은..


아내 호정은 권태기다. 성욕이 오르기 시작했으며 호기심과 욕망을 저질러서는 안 되는 상대, 옆집 고등학생에게 돌린다. 사랑하는 아들이 있음에도 일탈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의 역할 보다는 아내로써의 역할이 부족하다 할 수 있는데, 남편에게 더욱 쏟아부어 화목한 분위기를 이끌어야할 아내는 되지 못했다. 유쾌한 성격의 에너지를 남편에게 더 쏟았다면 달라졌을까.


아들을 잃은 후, 두 사람의 태도는 이들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멈추지 않는 바람과 분노. 그나마 이들의 연결 고리였던 아들의 부재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남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들이 가족이란걸 증명해 줄 유일한 존재가 이들에게 조만간 결정했어야 할 사항을 앞당겨 준 것이다.


둘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미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까지 가족들에게 많은 폐를 끼쳤고, 역할 자체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어머니는 이제서야 자신이 하고 싶을 것을 해보고 싶다며 뒤늦게 욕망과 꿈을 찾아 떠나는 인물이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해피 엔딩을 맞이한 인물인데, 결국 그녀 또한 남편 뒷바라지보다는 억눌러왔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가족 유지의 책임감은 좀 부족했다 본다.


이 바람난 가족 외에 역할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이는 바로 '성지루 배우' 님이 맡은 남자 캐릭터. 과거 알아주는 운동 챔피언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술에 쩔어 산다. 가장의 역할을 없어진지 오래이며 그의 게으름으로 힘을 잃었든 외부적인 요인 떄문이듯 이름 값 제대로 못 하는 아버지는 가족에겐 애물단지이며, 결국 그의 분노는 영작 가족의 유일한 연결 고리를 없애버리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함께 풀어야 할 갈등을 나누지 못하고, 겉으로만 머릿수만 채워왔던. 아버지/어머니/남편/아내의 타이틀만 차지하고 있던 이들은 강풍을 제대로 맞은 듯 해체 되었다. 마지막 영작의 대사는 아직도 깨우치지 못 한 가장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임신했다며? 다시 합치자, 내가 더 잘할게

아이가 있어야만 가족이 되는건가. 둘의 유대는 오로지 아이만 있는가.



피를 나눈 친족이 아니라 해도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구성하는게 현대 사회다. 그런 경우엔 어떤 공통 사항이 있기 때문에 모였을 것이다. 아무리 친족이라도 싸이코가 있다거나 불화가 심각해지는 등 서로를 버리고 죽이기까지 하는게 인간이다. 이제 친자식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중요치 않은 시대가 왔다. 입양 문제도 그러하다.


가족의 중요성은 구성원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가 최선을 다하고 소통할 때 굳건해 질 수 있는 것. 영화 <바람난 가족> 은 이러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노출에 많은 힘을 쏟아 성욕 불만에 따른 가족의 파탄으로 보여지는 경향이 많아 보여 아쉽다.


https://youtu.be/VzTfWvnmT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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