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나는 임상수 감독 작품과 맞지 않다. 상류층을 비꼬는 등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겠으나 갈수록 기운 빠지는 스토리의 힘과 노출씬으로 풀어야 했던 상류-하류층의 전환점은 무언가 상한 음식을 먹는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포스터 문구처럼 '주었다 뺏는건 나쁜거라는' 복수에 찬 하녀의 이야기가 뻔한 전개로 이어질 화제작 <하녀> 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이 작품은 과거 '김기영 감독' 의 작품을 리메이크했으며 원작과는 너무 다른 평가를 받아 호불호가 극명한 작품이다.
STORY
이혼 후 식당일을 하던 '은이 (전도연)' 은 '병식 (윤여정)' 으로부터 어느 잘 나가는 부잣집의 하녀로 일할 것을 제안받는다. 그 곳에서 생활하는 은이는 돈 잘 벌어오는 능력남 '훈 (이정재)' 와 만삭의 아내 '해라 (서우)' 를 받들게 되며 귀여운 딸 '나미 (안서현)' 도 함께 있다.
어느 날 훈과 은이는 서로에게 끌려 성관계를 갖게 되고 이는 비밀 임신으로 이어진다. 훈이 장기 출장을 간 사이 둘의 관계를 알게 된 병식은 이를 해라 모녀에게 알리게 되고, 은이를 내쫓기 위해 두 사람은 복수할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고급스러움으로 포장한 부정
사연은 모르겠으나, 이미 오프닝부터 서민들의 웃음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잃는 여성의 모습과 함께 메시지는 던져졌다. 뻔하게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과거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이 나같은 평범한 계층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하녀> 는 상류층 가정으로 깊숙이 들어가 풀어낸다. 커다란 저택과 깔끔한 정원과 그 안을 꽉 채운 고가의 가구들. 너무나 고귀하고 하얀 색감에 눈부실 정도로 깨끗한 모습은 압도적이며, 그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당장 굽혀야 할 것 같은 위압감마저 든다.
영화 <하녀> 의 배경은 겨울이다.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눈과 떼 없이 고귀할 거 같은 집의 분위기는 사실 파헤쳐 보면 부정스런 생각과 행동으로 가득찬 가족의 추악함을 대비시키는 장치가 아닐까 한다. 갖고 싶은걸 다 갖고 있어도 결국 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악하다면 그 안의 모든 것 또한 추악한 것이며 언제든 빛 바래질 수 있는 것. 고귀한 것들은 그들의 추악한 세계에서만 그들에게 고귀한 채로 남는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과 물 뗴 하나 찾기 힘들 정도의 집 안 곳곳의 모습은 겉으론 깔끔하고 웃고 있는 이들이 어떤 사악한 행동을 펼쳐가는지와 대비되며 그들에게 더욱 손가락질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두 하녀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미 오랜 시간을 모든 자존심 다 버리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 바친 병식의 굳건함. 영화 속 사건과 같은 일이 이전에는 없었기에 서로 얼굴 붉힐 정도는 아니었겠으나 오히려 웃는 얼굴로 하대하는 상황이 더 열받지 않았을까. 목표를 위해 꿋꿋하게 버텨낸 그녀는 이제 아들의 성공과 함께 무거운 족쇄를 벗을 수 있었다. 병식의 말대로 배운 것 없이 그저 능력자에게 조아리며 자신을 깎아내어 가족의 행복을 지켜야 했던 여성상의 마이너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이미 그런 수동적인 자세로 오래 살아왔고, 원래 그런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은이는 이미 아이를 잃어본 적이 있다. 남편과 어땠을지는 몰라도 모든 사랑을 퍼주고 싶었던 대상의 상실로 그녀는 오히려 훈이, 해라 보다 더욱 나미를 돌본다. 이 또한 <바람난 가족> 에서 봤듯이 엄마, 아빠라는 역할의 이름만 차지하고 있을 뿐 아이의 정서에 깊숙히 공감하지 않은 부모의 유대감 부족을 비판하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나미는 은이에게 더욱 공감하게 되며, 마지막 은이의 자살은 이후 성장해가며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은이가 원했던 임신이 아니다. 훈이와 은이 모두 한 순간의 욕망으로 인해 몸을 섞었지만, 여기에 애초부터 상류층으로 올라가고자 했던 은이의 마음이 있던 건 아니다. 임신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약자인 은이에게 낙태를 권하고, 몰래 그 기능을 상실케 하는 악행은 고귀함으로 가득찬 이들이 할 짓은 아니었다. 임신 이후, 마치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계층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짙은 화장을 하고 꾸미는 은이의 모습은 상승을 꿈꿨지만 모든게 무너졌다.
잃어버린 모든 것. 협의도 없이 마음대로 줬다가 빼앗아간 이들을 향한 은이의 분노는 결국 그들 앞에서 자신을 불태우는 자극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는 어느 곳에 가서도 제대로 속사정을 말할 수 없는 약한 계층의 씁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고급스런 샹들리에에 매달려 불타는 동안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까. 이 장면 이후가 곧바로 아무일 없었단 듯이 가든 파티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나오기에 세상 참 부질없구나 하는 뻔한 교훈으로 이어지면서도 화가 나는 부분이다.
영화의 흥행과 달리 이 작품을 통해 윤여정 선생님은 그 해 여우조연상을 휩쓰는 등 거의 유일한 승자였다 해도 될 정도다. 임상수 감독과의 인연은 이후 <돈의 맛> 으로도 이어지지만, 어쨌든 이 감독이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과 눈에 보여주는 장치들이 나는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