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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Jul 28. 2021

[지구에서 한아뿐] 전 우주를 뒤덮을만한 친환경적 사랑

세계의 규모, 형태가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요즘 미친듯이 더워 집에 있는 것도, 잠자는 시간도 너무 괴롭다. 그래서인지 소소하게 즐기는 취미들마저 귀찮고 힘들어지는 나날들. 독서도 그러하다. 조금은 선선한 때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작품. 엉뚱하지만 기발하고, 사랑스러운 메시지를 담는 ‘정세랑 작가’ 의 두 번째 작품 <지구에서 한아뿐>.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한아’ 가 캐릭터 이름인지 몰랐다. ‘한아뿐’ 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는가 했는데 ‘only 한아’ 라는 뜻. 대체 그녀는 무엇이 특별하길래 지구에서 유일한 존재로써 타이틀에 당당히 내걸린걸까.



Story

‘한아’ 는 조그만 공방을 운영한다. 사람들은 버리려 했거나 다시 손 보고 싶은 옷들을 맡기고, 그것들은 ‘한아’ 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옆에는 함께 일하는 친구 ‘유리’ 가 있다.


그런데 ‘한아’ 에겐 남친 ‘경민’ 도 있다. 단, 그는 ‘한아’ 와 달리 너무 활동적이라 밖으로 쏘다니길 좋아하고, 심지어 충분한 논의도 없이 홀로 캐나다로 휙 떠나버린다. 그런데 몇 일 후, 캐나다에서 이상한 광선과 함께 인기 가수 ‘아폴로’ 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듯한 사람들의 증언. 얼마 후, ‘한아’ 는 귀국한 ‘경민’ 으로부터 이상한 점을 여러 느낀다. 자신에게 너무 따스하게 대해주는 태도, 그리고 우연히 초록색 빛을 내뿜는 것을 본 이후로 그의 정체를 더더욱 의심하게 되는데…



<역시 그녀의 사랑은 독특하다>

역시 ‘정세랑 작가’ 의 세계관과 사랑 이야기는 독특하다.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도 않는데 그녀가 구축한 세계와 사랑을 비유하는 소재 등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주고 받을 듯한 최신식 사랑을 보여준다. 나는 너무 탑골에 갇혀 사는 듯 하다.


머나먼 우주에서 자신을 관찰해 온 외계인.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봤던 징그러운 액체를 흘리는 형태가 아니라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순수하게 ‘한아’ 와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깨끗한 외계인. 무작정 ‘I love you’ 를 외치는 스토커 식의 사랑이 아니라, 환경 보호와 여행의 댓가로 치뤄야 하는 성실한 임무 수행이라는 설정이 더해지며 뻔한 러브 스토리에서 벗어났다.


‘경민’ 을 제외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까보면 통쾌한 성격이라는 점이 좋다. 여주가 너무 소심하고 착하기만 했다면 외계인의 성격 또한 동글동글 하기에 매우 루즈한 작품이 되었겠지만, 여주들이 보여주는 시원스런 대사와 사고 방식은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우주적 규모로 잘할 필요 없어요. 동네 규모로 좀 잘하면 안 돼?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까 그런 확률을 뚫은 아이라면 한번 낳아볼까 하고.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 아닌 생물들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우리는 쪽수가 더 필요해.


묘사 이외에 메인 소재 또한 흥미로운 선택이다. 단순히 티격대는 두 사람의 연애를 다룬게 아니라, 화합해야만 하는 세계, 환경, 인간 이외의 존재. 우리가 원하는 그것 평화와 공존을 말하는 이들은 '평화를 전도하는 커플' 로 불러도 될 정도다. 


그리고 이는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만났을 때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랑의 과정과 결말로 이어지며 나 같은 솔로에겐 다시 한 번 염장을 지르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사랑과 내 자신>

<지구에서 한아뿐> 의 메인 테마인 사랑 이야기는 진부한 교훈일 수 있다. 결국 형태와 배경, 세계의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사랑받고 있다 느끼게 해 주는 존재. 이 세상을 희망차게 바꿔보고 싶고, 힘차게 살아보고 싶게끔 만드는 존재.


'경민' 과 '한아' 는 분명 사랑하는 사이였고, 비록 성향과 나아가고자 했던 무대가 달라 삐걱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경민' 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new 경민' 은 '한아' 와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한아가 경민을 다시 접했을 때, 뭔가 많이 달라진 스타일에 의심을 품고 그것을 녹색 광선을 통해 확신했을 때 거리두기에 나섰지만, 그의 정체를 알고도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한건 '마음 (mind)' 때문이다.


여기서 'new 경민' 은 일편단심의 끝판왕이다. 어쩌다보니 망원경을 한아에게 완전 고정시키게 되었고, 그 어려운 댓가를 각오하면서도 달려온 시간과 평생을 갚아나가야 할 빚. 대부분의 여성이 원츄할만한 존재 아닌가.


액체 상태가 없거든. 죽으면 기화해버려, 가스로. 그런데도 액체 상태인 마음을 알았으니.
나 역시 어느 순간 내가 속한 곳을 닮지 않게 된 거지.
노인의 모습으로도 그 안에 푸르게 빛나는 젊은 사랑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한아는 사랑하는 배우자, 정말 흔하지 않은 이를 다정하게 보았다.


살아온 세계 자체가 다르니 모든 것이 다를 수 밖에. 그럼에도 같은 세계를 꿈꾸고 지금의 나를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와 성질의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플라토닉 사랑..

'new 경민' 은 외부의 세계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한아' 에게 보여주면서, 또한 '한아' 는 자신이 그리고픈 세계에 이 새로운 세게를 덧칠하면서 그렇게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오히려 마찰 없이 이렇게 소소하게 서로를 이해가며 완성한 해피 엔딩이 <지구에서 한아뿐> 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모나지 않은 인물들. 그리고 자기 반성이 뚜렷한 이들.


한아가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지구와 사회.. 나의 세계...>

요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을 다시 보고 있는 지라, 8월에는 환경 관련 도서를 몇 권 읽을 계획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지구에서 한아뿐> 에서 다루는 부가 소재와 잘 들어맞는다. '한아, 유리' 가 생각하는 친환경적이면서 평화로운 세계.


언제부터 서로를 믿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지. 한 사람만의 신뢰라도 얻는건 과연 쉬운 일인지. 3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무언가 명확하게 인지시킬만한 상황이 생겨야지만 생각해 보게 되는 지구와 환경, 그리고 사회의 조화 문제.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8년 전 즈음에는.. 음.. 그 당시에 특별한 환경 이슈는 없었지만 어쨌든 '정세랑 작가' 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완전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깨끗한 유토피아. 이미 우리가 가진 것을 되돌아보고 충분히 재활용하여 재창조하는 깨끗한 세계. 소박한 사랑과 세계를 돋보이게 하는 소재라 마음 한 곳이 아련하다.



<아쉬운 그대들이여...>

한 가지 아쉬운 건 주변 인물들의 활용이다. 초반부, 뭔가 다른 등장과 성격으로 끝까지 활약할 것으로 보였던 '주영, 정규, 경민' 은 증발해버렸다. 


'아폴로' 의 열렬한 팬으로써 당장 우주로 날아가 '다스베이더' 까지 쳐부술듯한 '주영' 은 당시 응칠의 주역이던 '정은지' 를 대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우주로 날아간 후 그녀의 활약은 없다.


아직은 지구에 남아있으면서 두 커플의 관계에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했던 '정규' 는 그냥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이 사단을 만들게 한 '오리지널 경민'... 그렇게 맘에 드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가 오랜 세월 후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돌아온 전개는 급작스러웠다.



무엇보다 '경민' 의 귀환이 나왔을 때는 이미 작품의 95% 정도가 진행된 상태였기에, 그를 통해 느꼈을 '한아' 의 심적 변화나 뻗어나오는 생각.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new 경민' 이라는 사실로 다시 이어지기까지 그의 등장은 번개처럼 확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저 끝의 외곽 우주까지 가서야 다시 '한아' 를 떠올렸다는 마음. 급작스럽다.


두 커플의 진정한 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겠으나 죽어가는 그의 모습을 묘사한 파트가 상상만으로도 안쓰러워서 무언가 '지못미' 같은 느낌이랄까. 괜히 나도 미안해지더라..



너무 깨끗해서 보기 좋은 커플. 사랑과 조화를 이야기하는 커플. 그래서 마음이 아련하고 부럽다. <지구에서 한아뿐> 은 잔잔히 주위를 둘러보고, 이를 통해 만들어가고픈 작은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는 작품이다. 차분함과 깨끗함, 아련함을 느끼고 싶다면 강추..


그런데 왜 리커버 표지는 이렇게 우울하게 만든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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