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7- 에드워드 애슈턴

수많은 미키7들에게

by Harong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며 미키 7 SF소설을 읽게 되었다.

사실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한번 건너뛸까 했는데, 편식하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끝까지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또또, 이놈의 책은 기대 없이 읽는 나를 놀리듯 뒤통수를 친다!!

SF 무관심자에게 재미와 의미와 많은 영감을 준 에드워드 애슈턴에게 감사를.....(박수)


미키 7은 위험한 우주 식민지 개척 임무에서 죽을 때마다 복제되는 소모품 인간(익스펜더블)이다. 죽음을 거듭하며 임무를 수행하던 미키 7은 우연히 새로운 미키 복제본 에잇(8)과 함께 공존하게 된다. 둘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외계 생명체와의 갈등도 심화되는 흥미로운 내용과 미키가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의 의미를 고민하며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게 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스포 없음)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의 글을 봤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
인간은 원래 나약하고 흔들려.
인간은 원래 환경에 지배당해.
인간은 원래 약한 면이 있어.
인간은 원래 남이 안 보는 데서는 더 약할 수 있어.
인간은 원래 대부분이 멍청해.
인간은 원래 도덕을 안 지키고 싶어 해.
인간에게 거짓말은 본능이야.
인간은 원래 자기 욕망이 제일 중요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대단한 축에 드는 거구나.
책임지는 걸 마땅히, 좋아하는 인간이 대단한 거구나.


모든 걸 다 느끼는 인간으로 만들어놓고 우리와는 다른 괴물로 취급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공감능력도 없고 무지와 이기, 나약함 그 자체인 인간이라는 존재.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도 잊어가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삶으로 어떤 따뜻함으로 세상을 춥지 않게 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나의 능력 밖이고, 오만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가진 온도를 더 뜨겁게 달구기 위해 가끔은 무리할 때도 있는 것 같다. Burnout처럼 다 태워 에너지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지쳐 놓아 버리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의 정면만 보지 말고 입체적으로 보라는 말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을 때 그 사람의 옆면과 뒷면, 모든 면까지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오히려 너무 모든 것들을 안고 가려하다 보니 상대의 예상치 못한 이면을 마주할 때면 너무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도 리밋이 있는데 말이다.


사랑하기로 했으니 내가 품고 가야 할 문제라고만 생각해 왔던 게 문제일까.

어쩌면 나는 나를 너무나도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어쩌면 내가 받는 '사랑'을 익스펜더블 같은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 아가페적인 사랑을 무한히 가능하게 줄수도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이 노력하지 않고 안일해진다면 유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미키를 대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당연한 존재로, 당연한 사랑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의 질문을 나누고 싶었다!


[27장 마지막 부분]

이들의 만남이 왜 다른 거점과는 달랐는지 역사책에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세워 볼 수 있다.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개척민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 시간이 열쇠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Q1. 이 구절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Q2. 복제된 존재가 원본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테세우스의 배)

-전설적인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사용했던 배가 오랜 세월 보존되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부품이 하나씩 낡아 떨어졌고, 그것들을 새 부품으로 교체했다.

그러다 결국 모든 부품이 교체된 순간, 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긴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꽤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도 믿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다 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본질'이 갖는 의미가 '보이는 것' 때문에 혼돈되고 희석되어 가는 경우가 안타깝다.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보고 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랑을 기반한 특별한 시각'이 가능하구나를 깨달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자주 들여다보는 나라도 너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못할 것 같은데' 생각했었다.


꼭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관계의 형태나 말과 행동 또한 보이것들에 해당된다면 그것이 무너지고 깨진 것 같아 보이더라도 본질이 있는 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두렵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보이는 것'들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 변화들까지도 사랑과 본질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어쩌면 보이는 것이 달라져도 그 본질은 동일하기에 다시 살아 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물론 미키는 7번이나 다시 태어나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오롯이 느껴야 했지만, 그렇게 적어도 7번은 죽을 만큼 힘들고 두려워도 '다시 해보자'하는 생각이 든다. 그 본질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미키 seven도 여러 번의 죽음과 고통으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미키를 만날 수 있었고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지혜와 진짜 용기도 생기지 않았을까.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 끝에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이루고 정착한 이 세상 수많은 미키 7들에게 너무 고생 많았다고, 멋지고 존경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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