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관행인가 기망인가
법무법인 태평양 IP 팀에서 근무했던 변호사이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미술경영 대학원에서 공부 하고 있습니다.
미술과 법이 충돌하고 또 얽히기도 하는 미술분야의 판례를 소개합니다.
가수 조영남씨의 화투그림 사건은 미술계와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조영남씨는, 직접 화투그림을 완성하지 않고 작가를 고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였음에도 그러한 작업 방법을 알리지 않은 채 작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사기죄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혐의에 대하여,
1심은 유죄를 인정했으나 2심과 3심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 기망행위에 해당하는가?
대법원은, 사기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1) 미술작품 거래시 창작과정 특히 작가가 조수의 도움을 받는 등으로 다른 관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관행이어야 하며, 2) 작품을 구매한 사람이 이러한 사정을 고지받았다면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1)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으나, 2)에 대하여 작가나 작품의 인지도, 아이디어의 독창성이나 창의성,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등을 포함하는 작품의 수준, 희소성, 가격 등의 구매 결정 요소가 구매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보았습니다. 따라서, 제작과정이 기대와 다르다는 것만으로 구매자가 기망당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심은 조영남씨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다른 작가를 공개하면서 "칠하는 것은 내가 칠하나 이 아이가 칠하나 똑같다"는 인터뷰를 한 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 누가 작가인가?
이 사건 판례에서는 작품의 제작 관행과 누가 작가인가 여부에 대한 쟁점도 부수적으로 판단되었습니다.
2심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유명 화가들이 공방에서 조수나 화가지망생을 두었다는 점 현대 미술에서 유명한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등 작가들이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개념만 제공할 뿐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실크스크린 등 기계적인 힘을 빌리거나 고용된 다수의 조수 또는 보조인력을 이용하여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영남씨 외 다른 작가들은 "기술적인 보조자일 뿐, 그들 각자의 고유한 예술적 관념이나 화풍 또는 기법을 이 사건 미술작품에 구현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한편,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비평과 담론으로 다루어야 할 미학적인 문제이며, 예술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여 판단을 유보하였습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다른 관여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습니다. 사용자의 기획 하에 업무를 보조하는 피용자로 보아야 할 것인지, 동등한 또 하나의 작가 즉 공동 창작자로 보아야 하는지요. 물론, 이는 개별적인 사안마다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미술 비평적으로는, 조수나 보조 작가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공장화된 생산방식 그리고 브랜드 파워를 힘입어 투자상품이 되어가는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