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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Mar 08. 2022

아이가 아플 때 부모는 무능함을 느낀다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 너무 믿지 마세요.

금요일 하원 후 유치원 키즈노트에 알람이 떴다.

 <ooo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으니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실시하여 주시기 바라며 그 결과를 회신하여 주십시오>


제주의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3천 여 명이 넘는 가운데 회사에도 곳곳에서 동료들의 확진 소식이 들려왔다. 요 며칠 누가 안 보여 주변에 물으면 틀림없이 코로나 확진이었던 것이다. 지난 2월 회계 말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아파도 검사를 받지 말자며, 아프더라도 회계마감은 한 이후에 3월에 아프자며 서로에게 웃픈 농담을 건네기도 했었다. 어쩌면 이미 코로나에 걸렸다가 증상 없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오미크론인지 코로나인지 어찌 됐든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는 게 이상할 수준으로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우리 가족만은 피해 갈 수 있으면 피해 가고 싶었던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유치원에 간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3일 만에 코로나 확진 원아라니, 하필이면 같은 반이라니.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금요일 오후 6시 넘어서 받은 연락이다 보니 보건소나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집에 구비해둔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 키트를 사용하게 될 날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손 소독을 하고 아이를 앉힌 후 '거사'를 치렀다. 이미 2월에 보건소에서 한 번 경험을 한 아이는 조금 긴장한 듯싶었지만 곧 '코가 시원~~ 하다.' 하며 별 일 아니라는 듯 허세를 떨었다.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증상도 없고 검사 결과도 음성이니 안심이 되었다.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결과를 알리고 일상적인 주말을 맞이할 참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10시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아이가 다가왔다.

- 엄마 나 세상이 빙빙 돌아.

무의식적으로 손이 아이 이마를 짚었을 때 직감적으로 위험이 찾아옴이 느껴졌다. 양 볼은 이미 빨갛게 달아올랐고 아이의 몸은 불덩이였다. 잠이 확 달아났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아이의 체온을 측정해보니 39도가 넘었다. '올 것이 왔구나.' 다시 또 하나의 자가진단 키트를 개봉했다. 결과는 다시 음성이었다. 아이가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피곤해서 몸살이 온 모양이었다. 어린이용 시판 종합감기약을 먹이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입맛이 없다면서도 사리곰탕 1개를 호로록 먹는 아이를 보니, 어벤저스 놀이를 한다며 소파에서 이리저리 뛰는 아이를 보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처지지 않고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열이 아직 내리지 않았다는 걱정도 잠시 잊혔다.


정오를 지나니 한낮의 게으름이 슬슬 눈꺼풀을 무겁게 당겼다.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먼저 잠이 들었고 나도 깜빡 잠이 들려던 찰나였는데 아이 몸이 이상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곁에 두었던 체온계로 다시 온도를 측정해보니 아까보다 열이 더 올랐고 아이의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아이에게 먹였던 감기약에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가 소량 들어있었던 걸 확인하고 이브로펜 계열의 해열제를 먹였다. 물수건을 아이의 머리에, 목에 얹어주고 겨드랑이를 닦이고 손발을 주물러 주었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39도 대로 내려오고 38도 후반으로 내려오자 아이는 편안해졌는지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곁에 두고 낮잠을 자려고 했었다는 자각이 몰려왔고 무슨 엄마가 이렇게 형편이 없는지에 대한 자책이 밀려왔다. 오후의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한 숨 자고 난 아이는 열이 확 떨어진 건 아니었어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배가 고팠는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서 치킨도 시켜 먹고 이야기 놀이도 하며 몇 시간 남지 않은 일요일 저녁 시간을 야무지게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저녁 8시 30분쯤 되었으려나, 나의 방심을 기막히게 알아차린 듯 아이의 체온이 또 한 번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낮에 한 것처럼 열을 내리기 위한 모든 액션을 취했다. 그런데 약을 먹인 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났는데도 열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40도를 넘고 40.5도를 찍었다. 체온계의 색깔이 빨갛게 변했다. 독서실에 간 남편을 서둘러 호출하고 응급실에 가려고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침대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프지 않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 열을 내려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내 몸짓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아이의 체온이 40도를 넘기고 기운 없이 축 쳐져 있었다.

- 아가, 엄마가 다 아플게. 아픈 거 엄마한테 주고 얼른 낫자.

아이의 발끝에 앉아 손발을 주무르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 아니야, 엄마. 그러면 엄마가 아프잖아. 내가 얼른 나을게.

잠이 들다 깨다 하던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씩 웃으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의사인 엄마라면 뭔가 다른 처치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이렇게 열과 싸우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보잘것없다는 것이,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엄마라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응급실에 가지 않은 건 아이 때문이었다. 돌쯤에도 원인불명의 고열로 며칠을 앓았었는데 열로 인해 아이 핏줄이 보이지 않아 링거 바늘을 꽂지 못해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그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병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며 우는 바람에 열이 더 오를 것 같아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던 것이다. 밤 10시쯤 또다시 자가진단 키트를 개봉해 아이 코를 찔렀다. 세 번째인 이번에도 역시나 음성이었다. 해열제를 먹인 후 2시간 정도 지나서야 다행히도 슬슬 차도가 보였다. 40. 5도에서 40도로 내려왔고 밤 12시쯤이 되자 39도 대가 되었다. 낮에 잠을 잔 탓인지 몸의 열기 때문인지 아이는 쉽게 밤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이 유치원은 월요일 하루 더 쉬기로 했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 하니 새벽 두 시쯤 아이 온도가 38도인 것을 확인하고 나도 누웠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38도는 여전한데 컨디션은 확연히 좋아 보였다. 고열은 잡혔지만 혹시 모르니 감기약이라도 처방받는 게 좋을 거 같아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병원에 가기 전, 다시 한번 자가진단 키트를 꺼냈다. 금요일부터 총 4번째 자가진단이었다. 이번에도 음성이었고, 열감기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감기약 처방이라도 받기 위해 남편과 아이를 병원에 보내고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단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아이가 항상 다니는 이비인후과가 코로나19 호흡기 검사 병원으로 지정되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모양이었다. 아이는 몸이 아프지 않은데도 유치원 가지 않는 게 신이 났는지 다시 병원으로 향할 때도 잘 다녀오겠다고 힘차게 인사까지 하며 선뜻 나섰다. 오전에는 휴가였던 터라 오후 출근 준비를 위해 씻고 나왔는데 남편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 들어와 있었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메신저를 확인하니 아뿔싸. 신속항원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다. (PCR  검사 결과는 기다리는 중이다.)


네 번의 자가진단 키트에서 음성이 나왔기에 코로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믿음(코로나19가 아니가 열감기일 거라는)과 다른 결과에 대한 우려(코로나19 확진)를 무마시킬 수단에 불과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밤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고열에 시달린 것이고 나와 남편은 그동안 아이가 안쓰러워 아이의 코를 충분히 깊게 찌르지 못했기에 검사 결과가 계속해서 음성이 나왔던 것이다. 집에 들어온 아이는 울었는지 눈가가 발갰고 왼쪽 콧 속에 코피가 고여있었다. 코피가 난 때문인지, 검사 받을 때 서러웠던 기억 때문인지, 엄마를 보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기 때문인지, 이 모든 이유 때문인지 아이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아이는 신속항원에 이어 PCR 검사까지 연이어 코를 찔린 바람에, 그것도 집에서와는 달리 면봉이 코의 깊은 곳까지 가차 없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꽤나 놀란 듯 보였다. 남편도 검사받는 아이 옆에서 깜짝 놀랐다고 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곧 이어진 오후 진료에서 나도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펜싱 칼 끝이 날카롭고 정확하게 상대를 공격하듯 의사 선생님은 익숙하고도 능숙한 솜씨로 한 방에 내 콧 속으로 면봉으로 찔러 넣으셨다. 결과는 음성, 남편도 음성이다.


확진자의 동거인 의무 격리가 해제되어 증상이 없는 나는 내일은 출근을 하기로 했다. 3월 7일인 월요일부터 업무 변동이 있었는데 오늘 출근을 하지 못했으니 내일은 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고열이 하루 만에 끝나서 다행이었다. 나를 향한 세상의 웬만한 어려움에는 맞서 싸워 왔으며 대게는 이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의 일에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특히나 아이가 아플 때 말 그대로 내가 대신 아프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마음이 더욱 아리다. 아프지 않다고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 울고 있는 엄마를 다독일 줄 아는 의젓한 아이이지만, 아픔이 지나간 만큼 또 훌쩍 아이는 자라고, 아픔 없이 자라는 아이는 한 명도 없겠지만 부족한 엄마인 나는 그저 아이가 아픔 없이 자랐으면 하고 오늘도 바란다.


* 더하는 말

아이는 코로나 확진 통보를 받았고 저는 화요일 오후부터 오한과 몸살이 심해서 다시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와서 pcr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확진이지 싶어요. 생각보다 너무 아프더라고요 ㅠㅜ 모두 건강 조심하시길요. 아, 그리고 자가검사키트 너무 믿지 마세요 신속항원 양성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집에 있는 자가검사키트는 음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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