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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콩나물죽이 생각나는 날

코로나 자가 격리 일주일은 생각보다 길고 힘들다

by 달콤달달

병가가 아닌 휴가를 일주일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발코니로 나가면 에메랄드 바다가 눈앞이고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해변 산책을 하는 중이라면 일주일이 꿈만 같을 텐데 휴가는커녕 자가 격리 중이다. 아이가 고열 끝에 코로나 확진을 진단받고 그다음으로 내가 확진받은 이후 며칠째 햇빛을 보지 못했다. 하루 한 번씩 온 집안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보지만 풀내 가득한 바깥 공기와 따스한 햇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했으나 처음 3일은 몸살에 오한에 인후통까지 너무 아파서 아프지만 않다면 출근 정도는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사라졌지만 중간중간 잠이 쏟아지고 기력이 없다. 잠깐 잠을 청하고 나면 옷이 다 젖을 정도록 식은땀이 주르륵 나 있어 하루에도 여러 번 샤워를 해야 했다. 바이러스의 침공에 내 몸이 무참히 무너져 내린 모양새다. 입맛도 없다. 이참에 살이라도 빠지면 좋겠다 싶지만 먹지 않아 내려가는 몸무게는 일상 복귀와 동시에 제자리를 찾을 것이 뻔하니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보다 먼저 코로나에 걸렸던 아이는 하루만 앓고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는 내가 아픈 게 백번 낫다. 이런 게 '엄마마음'이라는 건가.


어릴 때는 자주 체했다.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자리보전하고 있으면 이내 부엌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방까지 이어져 잠결에도 엄마가 무얼 요리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된장을 베이스로 해서 소고기를 가득 넣은 '시금치콩나물죽'.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맛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웠다. 아픈 동안 엄마는 몇 시간마다 전화로 안부를 물으셨다. 괜찮은지, 밥은 먹는지, 아이는 잘 노는지 이것저것 물으시다가도 '엄마가 가까이라도 있어야 뭐라도 챙겨주지..'로 끝이 났다. 딸이 마흔을 넘기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 바다를 건너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쉬운 대로 배달 어플을 통해 김치낙지죽을 시켰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는 것도 귀찮아 배달된 그대로 먹었다. 엄마가 해준 시금치콩나물죽의 구수한 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뭐라도 입에 넣어 기운을 차려야 했다.


내 몸이 괴로운 것도 괴로운 거지만 집에 틀어박혀 심심해하는 아이를 돌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삼시 세끼를 차려내고 틈틈히 놀아주기도 해야했다. 엄마의 역할을 수행 중에는 마음놓고 아플 수도 없구나... 레고, 그림 그리기, 역할놀이, 책 보기를 다 해도 겨우 오전 끄트머리일 뿐이니 사실상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티브이를 마음껏 보게 해주는 것이었다. 산책이라도 갈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한껏 부드러워진 봄바람이 볼을 스치는 상상을 해보았자 현실은 집 안 거실이다. 그것도 한껏 어질러진...일상을 누리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비록 마스크는 쓸지언정 두 발로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걷고 누빌 수 있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몸소 깨닫는 중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왜 매번 한 발짝 뒤에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엄마 곁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뜨신 밥을 먹고 자라던 시절에는 그저 엄마 곁을 떠나 독립을 하는 게 인생 최대 목표였더랬다. 가난한 엄마가 아니라 부자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는 상상도 수없이 했다. 이렇게 엄마를 멀리 떠나 제주에 살 줄 알았더라면 독립은 좀 천천히 했어도 좋았을 텐데, 시금치콩나물죽이 이렇게 먹고 싶은 날이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먹고 싶을 땐 항상 먹을 수 있었으니 그리울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일상으로 누렸던 자유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두어 자유를 빼앗는 것이 어떻게 벌이 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지 않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삶 속에서는 부디 선한 의지만을 행하는 내가 되자고 '의지'를 다진다. 산이 늘 푸르러서, 햇살이 따뜻해서, 바람이 선선해서, 바다가 아름다워서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 만물 또한 귀하고 귀하며 애틋하고 애틋하다. 멀리나마 엄마가 곁에 계시고 언젠가는 기어코 마스크를 벗고 평범한 행복을 회복할 날이 올 거라는 기대가 오늘의 희망이다.


하와이 해변이 생각난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바다와 한몸이 되어 유유자적하였고 나는 그 여유로움을 바라보며 바다를 만끽했다. 2016년의신혼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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