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최근에 본 가장 웃픈 뉴스 기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오미크론에 감염된 친구 없다면 친구 아예 없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친구가 있다는 걸 굳이 증명해주려는 듯 가까운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지난 화요일 오전 근무 중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같은 반 원아의 보호자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아이는 현재 PCR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 아이를 하원 시켜 달라는 긴급 메시지를 받았다. 남편에게 서둘러 연락했다. 남편이 공부 중인 게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동안에도 많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넘어간 적이 많지 않은가. 이번에도 부디 잘 넘어가기를!
밀접 접촉자의 기준이 완화되어 같은 공간임에 있었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밀접 접촉자가 아니라서 바로 PCR 검사가 불가능했다. 같은 반 아이의 결과가 음성인 경우 따로 검사를 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아이의 신속항원검사를 먼저 할지, 같은 반 원아의 결과를 기다릴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검사를 위해 면봉을 콧 속에 넣어 뇌까지 쑤신다는 흉흉한 소문을 익히 들었던 터라서 아이가 검사를 여러 번 받을 일이 걱정이었다. 제주도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매일 증가세인 상황이라서 검사 원아의 검사 결과가 하루 만에 빨리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요일은 휴가 낼 생각에 화요일은 야근을 하면서 급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수요일 아침이 되었는데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없어 마음이 초초했다. 원아의 결과가 양성인 경우 우리 가족은 바로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므로 휴가를 내고 집에서 대기 중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운 시간에 어린이집으로부터의 소식은 우려했던 대로 원아의 양성 확진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엄마가 확진이라 아이도 확진일 수 있겠다고 막연하게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마음이 휘청였다.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은 굳이 겪지 않는 게 좋다. 조심한다고 외식도 삼가고 집과 회사만 오가고 이번 설에도 육지 친정에 가지 않았건만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원아들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지만 밥을 먹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사고가 나를 향해 시속 200km로 달려오는 기분이었다. 걱정되고 긴장됐다.
호흡기 지정 병원에서 유료로 신속항원 검사를 받을 수 있지만 하필 점심시간에 딱 걸려서 오후 2시 이후에나 방문이 가능했다. 보건소는 공공기관이니 오후 1시가 되면 점심시간이 종료될 터였다. 제주시 보건소는 사람들이 많을 게 불 보듯 뻔해서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멀리 김녕에 있는 동부보건소로 가는 걸로 빠르게 결정하고 차에 올랐다. 중간중간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이자 동료인 원아의 부모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A는 동네병원으로, B는 종합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바로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지만 부디 음성이 나오기를 서로 빌어주었다.
보건소에서는 오후 1시 30분부터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40분에 도착하니 이미 줄을 서서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줄이 길지 않았고, 날이 춥지 않아서 야외에서 기다리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콧 속을 깊숙이 찌르지 않았는지 아이도 약간의 불편함만 표현했을 뿐 수월했고 나도 그랬다. 세 명의 검사 키트를 제출하고 5분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평소보다 더디게 흘렀다. 이윽고 5분의 시간이 지나고 검사 결과를 보러 갔는데 세 명 모두 검사 반응이 한 줄, 음성이었다. 죽 늘어놓은 검사 키드들 사이에서 두 줄로 양성반응을 보인 키트도 보였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바로 PCR 검사를 하겠구나 싶어 모르는 이를 걱정하는 마음과 우리 가족은 음성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양가적인 마음을 느꼈다.
걱정하실 집안 부모님들과 어린이집 담임선생님, 회사에 먼저 소식을 전하고 A와 B에게도 메시지와 음성확인서를 사진으로 전송했다. A는 병원에서 어린이집의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고, 아이는 3,900원에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었고, 아이가 음성이라 본인과 아이의 오빠는 따로 검사는 받지는 않았는데(검사비 25,000원씩을 각각 내라고 했다고 한다. 보건소는 무료!)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반면 B에게서는 본인은 음성, 아이와 남편은 양성 반응이 나와 바로 PCR 검사를 받았고 이제부터 둘은 집에서 바로 격리조치해야 한다며 멘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B는 요즘 업무가 바빠서 아침저녁으로 초과근무 하느라 아빠가 전담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고하니 밀접 접촉을 통한 감염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린이집의 다른 반은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받은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면 등원이 가능했고, 확진 원아가 나온 아이의 반은 등원이 불가했다. 목요일과 금요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으니 목요일은 남편이 아이를 보고 나는 출근해서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시작된 밀착 육아가 72시간을 끝으로 곧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럴 때면 아이가 둘, 셋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이들끼리 지지고 볶긴 하겠지만 서로를 친구 삼아 놀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는 혼자 놀기에 제법 능숙한 편이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자면 속이 짠하다. 그런다고 없는 둘째가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지는 않으니 엄마인 내가 친구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 때문에 둘째를 고민하게 될 줄이야!
음성이라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멀리 나가거나 실내인 공간으로 외출하는 것은 꺼려졌다. 집 앞 산책은 가능하지 싶어 아이에게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오자고 해도 아이는 좀처럼 집 밖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로 레고 조립이(라 쓰고 레고 지옥이라 읽습니다) 결정되었다. 마침 이번에 새로 주문한 레고 박스가 적절한 때에 도착해주었다. 처음 한 번은 설명서를 보고 거기 나온 걸 다 만들어야 그다음부터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노는 아이라서 부품 찾기는 내가, 조립은 아이가 하기로 역할을 정했다. 그렇게 사랑이 넘쳐나 보이는 집, 첨탑이 높은 웅장한 건물과 잘생긴 왕자님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성, 빠라바라바라밤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오토바이까지 하나씩 만들다보니 아담한 마을이 완성됐다. 3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이 외에도 로봇변신, 카드게임, 미로게임, 틀린그림찾기, 색칠공부 등 다채로운 놀이들이 이어졌고, 읽을 줄만 알았던 1-10까지 숫자 쓰기도 마스터했다. 놀이 하나가 끝나면 "엄마는 내 옆에서 책 보고 있어!" 하면서 엄마 시간도 챙겨주는 배려심 깊은 아이 덕분에 <밝은 밤>**과 <구의 증명>***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코로나 감염 가능성의 위기가 있었고, 고맙게도 위기가 우리에게 머물지 않고 스쳐가 주었으며 72시간을 아이와 붙어 있으면서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인지 보통의 주말보다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양성 판정을 받은 아이들과 부모들은 다행히 무증상으로 통증 없이 어려움을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이것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협만 남기고 사라질 줄 알았던 바이러스들은 2년째 끈질기게도 인류를 괴롭히다가 아예 자리를 잡고 드러누운 듯하다. 이제는 어디서부터의 감염인지 출처를 확인할 수도 없고, 감염 경로를 알 수도 없으니 더욱 막막하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전에,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 끝에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밤이다.
* <국민일보> 2022. 2. 6. 기사 제목
**<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021
***<구의 증명> 최진영, 은행나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