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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는 사람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by 달콤달달

15시 25분 청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15시 55분으로 30분 연락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제주에 살면서 육지로 갈 때 항공편을 주로 이용하다보니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지연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여정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김이 팍 샌다고 해야 하나. 공항에서 소요할 시간을 계산해서 여유있게 출발을 한 터라 비행기가 지연되는 만큼 시간이 붕 뜨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만 늦어진 게 아니라 탑승구도 변경되었다. 비행기 직접 연결 통로였는데 버스로 이동하게 생겼다.


혼자 몸이면 커피 마시면서 시간을 떼우고 비행기 탑승을 위해 버스를 타는 것쯤 문제 삼을 일이 아니지만 세 살 아이와 함께라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아직 이해력이 부족한 데다 참을성도 없는 아이는 곧 공항에서의 시간을 지루해하며 칭얼대기 시작할 것이다. 으아아아아!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깊은 한숨으로 대신한다. 이 순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엄마이다, 딸이 온다고(사실은 손주가 온다고) 공항에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을.


엄마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간 이후로 기차를 타고 가면 기차역에, 버스를 타고 갈 땐 버스 정류장으로 엄마가 마중을 나왔다. 기차에서 잠이 들어서 역을 지나칠 뻔 했다든가, 친구 누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던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역전의 키 낮은 건물들을 하나씩 지나쳐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르곤 했다. 어쩌다 엄마가 나오지 못하기라도 하면 입을 댓 발 내민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느릿느릿 집까지 걸었다. 돌멩이라도 하나 보이면 발로 차며 괜한 화풀이를 하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란 걸 이때 깨달았던 것도 같다.


내가 서른다섯의 늦은 결혼과 동시에 제주에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과년한 딸의 결혼이라도 홀가분하기보다 서운한 마음이 컸던 것일까. 엄마 친구들이 딸이 제주에 살면 제주도에 자주 놀러갈 수 있고 얼마나 좋으냐며 복도 많다고 말하면 “네 딸이나 제주로 시집보내라”고 받아쳤다. 외국이 아니라 고작 제주일 뿐이라고, 비행기 타면 금방이라고 얘기해도 엄마는 내가 자기를 버리고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우여곡절이 우리집에도 있었고 서로를 의지해 힘든 시기를 버텼으니까. 끈끈했던 연결고리가 툭 끊기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게 어디 쉽겠냐 했지만 결혼할 때 나는 정말로 엄마를 보기위해 매 주 비행기를 탈 기세였다. 결론적으로는 엄마 말이 맞았다. 비행기를 타는 건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번거롭고 피곤한데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짐을 싸는 것부터 완전 큰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매 주는 커녕 분기에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비행기 값도 만만치않다. 직장에 다니니 보통 주말에만 시간이 허락되고 주말엔 할인이 거의 없어 항공권이 비싸다. 혼자일 때와 부부 둘이 움직일 때가 다르더니 아이 항공권을 따로 발권하게 되면서부터 육지 한 번 다녀오려면 비행기 값만 50-60만 원이 든다. 거기다 친정에서 가장 가까운 청주공항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공항에서 천안, 천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하니 그야말로 대이동이 따로 없다.


대략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일정 중에서 가장 큰 변수가 바로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다. 명절이고 연휴라서 공항이 혼잡할 것을 대비해 한 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처럼 비행기 일정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1시간 30분 이상(어느 때는 두 세시간을) 꼼짝없이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공백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지루하다 못해 화가 불쑥 치밀어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육지 할머니 집에는 언제 가냐며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지쳐버린 아이를 달래고 이제는 내가 아닌 내 아이를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비행기 연착소식을 전해야 하는 게 곤혹스럽다. 설렘으로 한껏 부풀었던 마음에 탕! 하고 구멍을 내버리는 악당이 되는 것 같달까.


이윽고 비행기 탑승시간이 왔고 우리는 날아가는 중이다. 나를, 이제는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퐁신퐁신 구름이 더욱 포근하였고 그라데이션 하늘 빛은 꿈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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