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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네 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

자식이 뭐라고, 딸이 뭐라고.

by 달콤달달

징.징.징.징.징.

다섯 개의 문자가 연속으로 왔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되었다>는 택배 알림 문자였다. 아침에 김이랑 탄산수랑 살림살이 몇 개 주문한 게 왔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쿠팡에서 주문한 거라서 CJ택배 일리가 없었다. 퇴근하고 유치원 입학 원서에 필요한 아이의 첫 증명사진을 찍어러 가는 길이었다. 집에 가서 밥을 하려면 늦을 것 같아 국밥으로 저녁까지 때우고 집에 도착하자 현관 앞은 커다락 택배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남편과 아이, 나까지 셋이서 순간 얼음이 됐다. 이게 뭐지? 거대한 택배 상자들의 정체는 금방 밝혀졌다.


엄마 손은 약손이 아니라 큰손이다. 무엇을 하든 푸짐하고 아낌없다. 잔뜩 와 있는 택배를 보니 반가움과 짜증이 동시에 올라왔다. 엄마표 김치 맛있는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이걸 다 언제 정리하란 말인가'하고 한숨이 났다.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김치를 이렇게 많이 보내면 어떡하냐고, 이게 다 냉장고에 들어나가겠냐고, 피곤해 죽겠는데 언제 정리하고 자라는 거냐고 퍼부을 작정이었다. "감사하다고, 맛있게 잘 먹겠다고 해. 딴소리 말고." 남편이 가만히 가위를 들고 와 택배 상자를 뜯으며 말했다. 혹여라도 김치가 샐까 몇 겹으로 김장비닐을 두르고 또 두른 뒤 검정 고무줄로 꽁꽁 감은 매듭이 보였다. 이번에는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얼마나 칭칭 동여매었는지 풀리지도 않는 고무줄은 기어이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 없이 아침부터 쪼그려 앉아 무를 채 썰고 양념을 만들어서 절인 배추를 버무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허연 배추가 먹음직스러운 빨간색으로 물들어 갈 때마다 맛있게 먹을 자식 얼굴이 동그랗게 떠올랐을 테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도 모르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하루를 애쓰게 보내고는 몸살에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르겠다. 제주에 살고 있는 딸이 그리우면서 야속했을 거라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 비행기 타지 않고는 갈 수도 없는 그 멀리까지 시집을 갔다며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면서 신세한탄으로 밤을 지새웠을지도.


네 박스 중 두 박스는 가득 김치였는데 남은 두 박스는 또 무엇인고 하니 쌀과 들깨다. 농사를 짓지도 않는 집에서 쌀과 들깨가 공으로 나올 리 없으니 돈을 주고 산 것인데 이걸 다시 택배 값을 지불해가며 제주도까지 보내는 엄마의 셈법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제주도에는 쌀이, 깨가 없을까 봐? 돈만 있으면 마트에서 쌀이며 들깨며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말해도 엄마는 '제주 거랑 육지 거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제주에는 논농사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쌀을 보내준 것까지는 그렇다치고 문제는 들깨였다. 엄마가 들깨를 택배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나는 이제 주말이 되면 이 들깨 포대와 빈 병을 챙겨 방앗간으로 가야할 판이다.


지난 번 엄마가 제주에 오면서 들기름 세 병을, 넘어지면 샐까봐 트렁크에 담지도 못하고 등에 지고 온 일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짐을 바리바리 이고 진 채 출구를 빠져나오는 엄마 모습이 너무 작고 왜소해보여 속이 상했던 차였다. 가방을 받아들었는데 그 묵직함에 몸이 휘청거리자 엄마가 말했다. "들기름 깨지면 클라(큰일 나)!. 조심히 들어!" 들기름을 얼마나 가져왔길래 이렇게 무거운가 했더니 무려 페트 3병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는 들기름 안 먹어도 되니까 가져오지 말라며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 말을 남기고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빠져 죽을 년."


엄마가 하는 행동의 모든 정답은 나를 향해 있다. 들기름에 부친 계란이면 다른 반찬 없이도 뚝딱 밥을 해치우는 나를 위해, 또한 딸의 식성을 똑닮은 손주 녀석을 위한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외할머니가 들기름 잔뜩 넣어 지져주는 조기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니 들기름이 아무리 무겁고 가져오기 에 번거롭다 한들 엄마 입장에서는 안 가져올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들기름을 비행기로 나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 먹겠다고 엄마를 설득해봐도 넘어올 기미가 없어 강구한 방법이 바로 들깨를 택배로 보내는 것. 엄마의 수고로움 중 일부를 내가 감당해 보기로 했다. 집 가까운 방앗간이 어디에 있나...고소한 냄새를 떠올리니 갑자기 허기가졌다.


결혼 전 내가 서울에 살 때 엄마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콧바람을 쐬러 오셨었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뮤지컬도 보는, 촌에서는 제법 자랑거리가 될 법한 문화생활을 '서울 사는 딸과 함께' 하는 게 엄마 삶의 즐거움이었다. 그때도 엄마는 지금처럼 늘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무겁지 않다고 했지만 기차역에 마중 나가 받아 들고 집으로 오다보면 팔이 저려왔다. 밥은 사먹으면 되니 반찬 좀 가져오지 말라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온기를 머금은 반찬들을 보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곤했다.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치울 거면서도 엄마의 정성들을 별 것 아닌 양, 없어도 되는 양 생각했던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나를 아프게 한다.


살면서 엄마한테 잘못했던 순간이 많지만 결혼 후 제주에 살고 있는 요즘이 엄마에게는 가장 불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엄마는 제주가 바다 건너에 있으니 '딸이 해외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가깝지 않더라도 차로, 기차로 오갈 수 있는 육지에 산다면 엄마가 김치를 담가주는 것도 모자라 '몹시' 신경 써서(최소 박스 테이핑 3번 이상) 택배까지 보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김치를 통에 나누어 담고 정리하고 했더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김치 잘 받았어!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 고생했겠다. 응, 새거나 터지거나 한 거 없이 잘 왔어. 고마워 엄마, 사랑해."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눈치를 챘을 테지만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간신히 삼키며 통화를 마쳤다.

<좌_쌀, 우_들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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