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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혼자서라도 행복할게

불효녀 이야기

by 달콤달달


엄마는 육남매 중 막내이다. 촌의 여느 평범한 집보다 조금 더 가난했던 집에서 자란 엄마의 최종 학력은 초졸이다. 큰 이모, 작은 이모는 학교 문 턱을 넘어보지도 못했으니 엄마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 학교에 다닐 때, 학기 초가 되면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걸 작성했었다. 가족관계부터 여러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답을 뭘로 할지 가장 고민했던 질문이 기억에 남은 모양이다. 부모님의 최종 학력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필요한 정보였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어찌 됐든 그 시절에 나는 ‘중졸’이라고 거짓으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초졸(당시에는 ‘국졸’이었겠다.)은 너무 부끄러웠고 고졸이라 하기엔 거짓말이 티가 날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부모님을 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결혼을 하면 하이얀 앞치마를 두르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꿈을 꾸었다는 엄마는 생활력이 강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이 자신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을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을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뱃속에 들어선 아이를 어쩔 수 없으니 일찍 체념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을 거라 짐작해본다. 우유 도매업을 하고 있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우유 짝을 날랐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꺼내시는 걸 보면 엄마에게는 퍽 서글픈 기억인가 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엄마의 고됨은 기나긴 터널의 초입이었을 뿐이었고 세상에 그렇게 긴 터널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나이는 고작 스물아홉이었다.


엄마에게는 막내들이 가지는 특유의 쾌활함이 있다. 사는 내내 삶의 어두운 기운이 엄마를 덮쳐올 때마다 본연의 밝음으로 스스로 빛을 만들어 출구를 찾아냈다. 나는 엄마 옷자락을 손에 꼭 쥔 채 뒤를 졸졸 따르면서도 휘몰아치는 풍파에 그 빛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늘 마음을 졸였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이 한 줌 옷자락을 손에서 놓아야만 할 거라고, 엄마가 몰고 다니는 인생의 먹구름이 내 인생까지 축축하고 습하게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스무 살이 되자 거침없이 집을 떠났다. 가만, 집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공간이었던가? 시멘트를 대충 발라 네모 모양으로 올리고 슬레브를 얹어 간신히 눈과 비와 바람을 막아주었던 단칸방을 집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다면, 그런 집도 집이라면 나는 집을 떠난 게 맞다. 스무 살에 떠나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서울 혹은 서울 근처에 살며 남의 집을 전전했다. 도시에는 내 집 아닌 집들이 넘쳐났고 밤이 되어도 환했다. 한강을 성처럼 둘러싼 아파트들은 커다랗고 튼튼해 보였다. 견고한 요새의 보호를 받으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 내가 속한 세상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행복인 듯 보였다.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아파트에 살아야겠다. 층층이 환한 아파트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다.


징. 징. 징. 징. 징. 휴대폰 속 엄마 사진은 지금보다 10년은 더 젊을 때인가 보다.

- 응 엄마, 퇴근했지. 응, 서준이 유치원 잘 갔다 왔어. 엄마는 집이에요?

- 응 집이지. 아휴, 도고 이모 무릎 수술했댜.

- 갑자기 수술은 왜?

- 마당에서 넘어졌는디,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빠진다더니 무릎이 뼈가 윽실어졌다대. 내일 와서 엄마한테 이모 돌보라는디 지금 코로나도 코로나고 나도 아파 죽겄는디 어딜 가냐고, 못 간다고 했네.

-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근데 누가 엄마한테 오래? 이모 자식들 다 두고 무슨 엄마가 가. 아빠는 또 어떡하고?

- 거기 자식이라야 누가 있어... 일숙이는 며칠 간호하다가 우울증 와서 미숙이한테 전화해서 막 울면서 당장 엄마 모시고 가라고 했다대. 그러니 워쩌. 아침 일찍 미숙이가 와서 이모 모시고 안산으로 갔지.

- 미숙이 언니가 맨날 아들 노릇 다 하네. 고생이야. 그래도 명숙이 언니가 근처 사니까 둘이 번갈아 하기야 하겠네.

- 명숙이가 하긴 뭘 혀. 지 년도 아파 뒤진다는 걸. 이모가 와서 엄마 좀 보라고 전화 왔다니께 얘는 뭔소리 하고 있어.

명숙이 언니였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모를 보살펴 달라고 전화한 사람은. 언니는 몇 해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완치 판정까지 받았었는데 얼마 전 재발해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얼굴 본 지가 언제더라? 이태 전 쯤 되는 듯하다. 퇴근 후 전해 들은 둘째 이모의 근황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 또 어제는 막내 삼춘 때문에 난리가 났었잖어. 아이고 또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리네.

- 막내 삼춘은 왜 또?

- 아오. 두째 삼춘한테서 전화가 왔어. 엊그제부터 암만 전화를 해도 막내 삼춘이 전화를 안받더랴. 그러더니 어제는 전화가 꺼져있다는 거여. 본 사람도 없다고 나한티 얼른 삼춘 집으로 가 보라고 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더라니께, 죽었지 싶어가꼬. 죽었으니께 전화를 안받지 살았으면 전화는 왜 안받고 또 왜 꺼져, 전화가. 안 그러냐? 두째 삼춘은 일 가서 지금 못 간다고 엄마더러 가보라는 거여.

- 그래서 엄마가 갔어?

- 가긴 갔지. 그런데 도저히 혼자 올라가지를 못하겠는겨. 그래서 열쇠 하는 엄마 친구헌티 전화를 했지. 문 두들겼는데 안 열어주면 죽은 거 아니냐? 혼자는 도저히 못 올라가겄더라고. 근데 마침 거기 주인아줌마도 오더라고. 누가 삼춘 죽은 거 같다고 주인헌티 연락했다고, 키 가지고 왔더라고. 그래서 같이 올라갔지. 문을 막 두들겨도 나와 보질 않는겨. 근데 또 테레비 소리는 나는 거 같어. 더 크게 두들기고 막내 오빠! 막내 오빠! 막 불렀더니 그제서야 문을 열어주는 거 아니냐고!

- 집에 있으면서 문은 왜 안 열었대? 전화는 왜 안 받고?

- 거기 누구네 놀러 갔다 전화기를 놓고 왔댜. 그런데 어지럽고 아파서 가질러를 못 갔다는구먼. 갔더니 다 죽어 가. 밥도 못 해 먹었다고 해서 뭐 먹고 싶냐고, 돼지고기 사다가 부글부글 지저 먹는 거 해주냐니께 그러라대. 그래서 또 집에 와서 고춧가루며 양념이며 해서 고기랑 사다 해주고 왔네.

- 고생했네. 바빴겠어. 그런데 엄마 서운하겠지만 삼춘 빨리 돌아가셔야 둘째 삼춘도 엄마도 걱정 하나 줄어.

- 그거야 그런디 그래도 산 놈을 어떻게 죽길 바란댜?


육남매 중 큰이모와 큰외삼촌은 서울에, 둘째 삼촌, 막내 삼촌, 엄마 셋은 고향 신촌리에, 둘째 이모는 차 타고 20분 거리인 도고면에 살고 있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자 형제들의 골칫덩어리인 막내 외삼촌은 칠십 평생 본인 손으로 100원 한 장 벌어본 적이 없다. 외숙모는 아이들이 독립할 때 까지 가정의 형태는 유지해 주었으나 아이들이 떠나면서 삼촌 곁을 떠나셨고 사촌 동생들조차 삼촌을 모시지 않아 원룸에 혼자 살고 계신다. 외숙모나 아이들한테 남편 노릇, 부모 노릇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삼촌의 노년이 비루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둘째 삼촌이나 엄마는 막내 삼촌이 동기간인지라 안쓰러워 자주 들여다보고 챙기신다. 이모에 이어 삼촌까지 걱정에 걱정을 얹어 들었더니 골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슬슬 전화를 마무리 하려던 차에 서울 큰이모 이야기를 또 꺼내려는 엄마를 황급히 말렸다.


- 엄마, 뭐 좋은 소식은 없어? 엄마한테서 듣는 얘기는 죄다 이런 거야. 우울한 거.

-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누군 특별히 잘 산댜?

- 특별히 잘 살지는 못해도 이렇게 못 살지도 않지. 시댁만 해도 다 얼마나 편안해. 내가 엄마한테 맨날 안좋은 소리만 하면 엄마 살겠어? 엄마가 하는 말들은 다 안 좋은 소식 뿐이야. 듣기 싫어 정말!

- 하긴, 다 골칫덩어리들. 둘째 삼춘하고 엄마나 괜찮지 다 머리 아픈 존재들이여.

괜찮긴 누가 괜찮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엄마는 변호사인 아들과 공무원이 된 딸이 자신의 인생의 마침표인양 만족하며 산다. 남들이 다 부러워 한다고, 돈이 암만 많으면 뭐하냐고 자식 농사가 제일이라고 생각하신다. 진흙구덩이 같은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두 발 버티고 살아 있게 한 힘이 아들과 딸이라고 믿고 계신다. 내가 봤을 땐 남들이 부러워 할 게 하나 없다. 젊어서 있던 재산 다 날리고 늙어서까지 나무를 캐는 일을 다니는 아빠나, 자식을 핑계 삼아 자신을 희생하고는 그 댓가로 자식들이 잘 되었다고 굳게 믿는 딱한 엄마와 없는 살림에 힘겹게 사법고시 뒷바라지 했더니 지 혼자 잘나 사법고시 패스하고 성공했다 생각하는 배은망덕한 아들과 결혼과 함께 이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친 비겁한 딸년이 있을 뿐이다.


- 이런 얘기 나한테 좀 하지 마, 엄마. 나는 여기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 같이 행복할 수 없는 거면 나 혼자서라도 행복할게. 제발.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절반은 욕이었으리라. 나는 기어코 손에 쥐고 있던 엄마의 옷자락을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손에서 놓은 기분이었다. 스르르. 엄마가 내게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죄책감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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