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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ul 01. 2022

수국 말고 들풀로 살자

여름, 수국의 계절

상견례를 제주에서 했다. 가족 여행 겸 부모님, 오빠 내외와 함께 제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실상, 첫 가족 여행이었다. 계절은 가을이었고 억새를 보러 산굼부리에도 갔었다. 일렁이는 금빛 물결들은 무희들의 군무처럼 화려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나부꼈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몸을 맡기고 이리로 스러졌다 저리로 스러졌다 하면서도 억새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꺾이거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억새들을 꺾는 건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손뿐이었다.


상견례를 마치고 시부모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길에 어머니께서 부모님과 어디 구경을 갔는지 물으셨다. 저기도 가고, 거기도 가고, 어제는 산굼부리도 갔다고 말씀드리자,

- 돈 내고 억새를 보러 갔다고? 참말로. 지천에 깔린 게 억새고만.

찻길을 따라서 억새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전날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얼핏 뒤를 돌아보았을 때 차 창에 비친 예비 시어머니의 옆모습은 세월과 함께 낭만도 희미해지고 촉촉했던 감수성도 메말라버린 듯 보였다.


결혼을 하던 해 가을에 산굼부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어머니 말씀처럼 가을이면 억새가 제주도 전역에 흐드러진다. 사람 반, 억새 반이었던 산굼부리와 달리, 사람들의 이기적인 손길이 닿지 않는 시골길 여기저기마다 억새들은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감을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낭만은 희미해지지 않았고, 감수성은 여전히 촉촉한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그저 풍족하게 지내셨던 거다, 봐도 봐도 닳지 않는 자연이 주는 부유함 속에서. 섣불리 그리고 함부로 시어머니의 세월을 재단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제주의 가을이 억새라면, 여름은 누가 뭐래도 수국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여름이 온 줄도 몰랐다.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로 가는 길에 아이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 엄마, 저기 꽃 좀 봐! 보라색 꽃이야! 엄마가 좋아하는 색, 보라색 맞지?

아이가 손을 뻗어 가리키는 손끝을 눈으로 따라갔더니 누구네 집인지 창문 아래로 수국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파란색과 보라색 그리고 연한 핑크색까지 소복소복 탐스럽게 피어있는 수국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여름이 왔구나, 하고 계절을 실감했다.


김영하 작가의 신간 <작별인사>를 구입해 놓고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김영하 작가의 지난 책들에 대한 믿음 혹은 의리로 새 책을 구입한 것이다. 김영하 작가라는 네임밸류(name value)가 그 사람의 글을 기대하게 하고,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지는 셈이다. 여름의 수국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듯, 사람이든 글이든 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수국 앞에서, <작별인사>가 꽂힌 책장 앞에서 빼앗긴 시선은 이내 거두어지지가 않았다. 나만의 색깔은 무엇인지, 내가 쓴 글이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머물 수 있을지 오래 서서 생각했다.


- 어, 여기도 꽃이 있네!

달뜬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수국을 쳐다보느라 미쳐 발견하지 못한 한 귀퉁이에 이름을 알지 못하는 들꽃이 피어있었다. 화려하지 않아서 금세 사람들의 눈에 들지는 못했지만 들꽃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가녀릴지언정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낮게 피어있어서 아이의 눈에 더 잘 띄었다. 그랬다. 수수해도 꽃은 그저 꽃이고 평범해도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 나는 또 어느새 나를 잊고 다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나, 뜨끔 했다. 진정성 있는, 소소한 글을 쓰며 내 길을 걷자더니 마음에 두 갈래 길이 나있을 줄이야!


일상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국을 보고 시선을 빼앗겼을 때, 유명 작가의 책 앞에서 그의 재능을 부러워할 때, 초심을 잃고 가야 할 길 앞에서 머뭇거리던 내게 밤바다의 등대처럼 불빛을 비춰준다. 뭍에 사는 사람들은 등대의 빛이 켜졌는지 꺼졌는지 관심이 없지만 인생이 바다에 깃든 사람들은 그 빛을 이정표 삼아 밤배를 항해한다. 들꽃이 거기에 피었듯, 등대의 불빛이 그곳에서 빛나듯, 나의 글도 여기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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