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배운 부자가 되는 방법
단칸방에 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보는 눈을 피해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금방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방이 곧 거실이자 주방이며, 책상이 밥상이 되는 공간에 살면서는 하려고 한 일이 불온한 무언가가 아니라 공부라 할지라도 내밀하게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오롯이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싶은 욕구들_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 것_은 아무도 없는 길지 않은 시간에만 가능했다. 불편에 대한 불평 따위는 하지 않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나 순간순간 무너졌고 어떤 밤에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꿀꺽, 슬픔을 삼켜보았지만 맞대고 누운 엄마의 등은 다 알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의 행동이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다는 것은 곧 다른 식구들의 모습도 다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쪽파나 대파 아니면 빨갛게 잘 익은 고추를 다듬는 집안일 하는 엄마를 못 본 체 하기는 쉽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엄마가 하는 대로 파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누렇게 뜬 부분은 잘라내고 고추 꼭지를 따고 배를 갈라 고추씨를 빼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봐도 엄마 손은 늘 내 손보다 빨랐으므로 일손을 보태는 걸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두런두런 엄마가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보태는 것이 진짜 내 일이라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러게!' 하며 맞장구치는데 열심을 다했다.
콩깍지로 가득 찬 포대를 앞에 두고 오랜만에 엄마 곁에 앉았다. 건강 검진 결과 대장 용종을 떼고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는데 검사 한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단다. 근심하는 엄마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 휴가를 받고 친정에 온 참이었다. 엄마는 당신이 알아서 병원에 다녀올 테니 너는 걱정 말고 쉬다나 가라면서 극구 병원 행을 마다했다. 제주에서 직장 다니는 딸이 휴가까지 받아 온 친정인데 하루를 고스란히 병원 가는 데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여기시는 것 같았다. 어쩌자고 멀리 제주까지 가서 살고 있는지, 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주 보지 못하는 엄마의 아쉬움을 말해 무엇할까. 푸념 섞인 엄마의 대화 주제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면 '나 혼자서라도 행복할 테니 이런 얘기 할 거면 차라리 전화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했던 나이지만 콩을 같이 깐다고 엄마 옆에 앉아서는 콩 까는 일 보다 엄마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러니 내가 엄마 딸이지.
- 콩 색깔이 특이하네!
- 호랑이강낭콩이여. 이걸로 밥 해서 누룽지 해 먹으면 얼~마나 꼬숩고 맛나는지 니 아부지도 잘 자셔.
- 아빠는 콩 안 드시잖어?
- 그냥 콩하곤 달러. 신품종, 신품종. 밤이여 밤. 맛있어, 아주. 시장 가서 살라문 오치기 비싼지! 요만큼이 만 오천 원, 이만 원 달라고 허는디 잘 됐구먼.
근처 사는 조카며느리가 자기도 얻은 거라며 엄마한테 나눠주고 간 터였는데 양이 제법 되었다. 엄마는 얼마 안 된다고 본인 혼자 하시겠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손이 느려도 엄마 혼자 하는 것보다는 속도가 빠르다고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기를 잘했다. 콩깍지를 벗기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콩을 까다 보니 금방 목이랑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쌓여있던 콩 더미는 곧 바닥을 보였고 까만 봉지에는 호랑이 무늬를 한 콩이 수북해졌다.
- 아이고 이뻐라! 부자가 된 거 같으네!
- 이깟 콩 조금 가지고 뭘 또 부자래.
- 이만이 먹고살면 다 부자지. 부자라고 밥 열 끼 먹간? 얼마 안 돼 보이더니 까니께 많네. 육만 원은 되겄어.
봉지에 담긴 콩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말했다. 인터넷으로 호랑이강낭콩 2kg에 19,000원에 판매되는 걸 확인한 후, 체중계에 깐 콩을 올리니 3.3kg이었다. 엄마가 말한 대로 족히 육만 원은 될 양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엄마들은 음식을 할 때에도 계량컵 대신 '대충, 알맞게' 양념을 넣는다. 그런데 또 그 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걸 보면 엄마들의 연륜이란 결국 한번 쓱 보면 딱 아는 '눈대중'에 있는 게 아닐까? 엄마들의 방식처럼 정확히 보다 적당히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사는 맛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부자가 되는 방법도 꽤나 쉽다. 호랑이강낭콩 한 봉지면 충분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