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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Oct 21. 2022

아빠 닮았어, 엄마 닮았어?

그래도 평발은 안 돼!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날, 의사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 아들이면 좋겠어요, 딸이면 좋겠어요? 첫째가 아들이니까 둘째는 딸이면 좋겠다, 그렇죠 엄마?

- 성별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딸도 좋고 아들도 좋아요.

정말이었다. 엄마한테는 딸이 있으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엄마와 나의 관계만 생각해도 엄마와 딸 사이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게도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 적은 없었다. 웬만한 딸아이보다 섬세한 감정과 공감력을 가진 첫째가 곁에 있기 때문일 수도, 아들보다도 딸을 키우기에 조금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기도 하다. 초음파 여기저기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 딸인 것 같네요, 90%.


내 발은 평발이다. 발바닥 쪽 아치가 무너져 내려 말 그대로 발바닥이 평평하다. 병원에서 '평발입니다.'하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맨발로 집 안을 걸어 다닐 때면 발바닥이 조금의 들뜸도 없이 방바닥에 밀착해 닿았다가 떨어지는 압력 때문에 '뾱'하고 소리가 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남편은 내가 '뾱뾱'거리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쿡쿡' 웃는다, 흡사 걸음마 배우는 아가들이 뾱뾱이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뾱뾱뾱뾱' 하고 나는 소리 같다나?


엄마도 평발이고 오빠도 평발이라서 어려서는 사실 내 발 모양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불편한 점들이 생겨났다. 신발을 고를 때, 특히 사고 싶은 예쁜 구두가 있을 때 망설여졌는데 아무리 예쁜 신발도 내 발이 들어가면 신발 안쪽이 불뚝 튀어나와 신발의 맵시를 망치곤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래, 많이 걸으면 발이 아파왔다. 발의 아치가 몸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지탱해주는 반면 평평한 발은 '쇼바'(shock absorber: 충격흡수장치) 없는 자동차처럼 곧이곧대로 무게를 흡수하기 때문일 게다.


머리카락은 얇고 숱이 많지 않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얇으니 같은 양의 머리숱이라도 더 적게 느껴지므로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머리카락은 아빠 쪽 유전자이다, 엄마 쪽 유전자이다 하고 콕 짚어 탓하기 어렵다. 친가와 외가 할 것 없이 양 가 할아버지들께서는 모두 이마 쪽이 훤하셨다. 각자의 아버지를 닮은 부모님을 내가 닮았으니 머리숱이 많았다면 오히려 출생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고민하느라 많은 밤 잠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산통 끝에 결국은 수술로 아이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마취 기운으로(하반신 마취가 먹히지 않아 전신마취를 했었다.) 비몽사몽 하던 중에도 남편에게 아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발이 평발인지와 머리숱이 많은지를 물었다고 한다. 아이는 다행히 남편 유전자의 힘으로 잔디인형처럼 풍성한 모발을 가지고 태어났다. 발은? 쏙 들어간 아치를 가진 날렵한 발 모양은 아니다. 다만, 퉁퉁한 살 속에 아치가 숨겨진 것이라고, 아이가 더 자라고 젖살이 빠질 때쯤이면 살 속에 파묻혀 있던 아치가 모양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정확하게는 그렇게 믿고 있다.)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딸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딸은 아빠를 닮는다'면서 자기를 닮아 못생기면 어떡하냐면서 남편은 걱정이 한가득이다. 못나기로는 부족함 없는 우리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첫째는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납작한 코는 귀엽고 둥근 얼굴을 복스러우며 쌍꺼풀 없는 눈은 개성이 넘친다. 쏙 들어간 볼우물은 또 어떤가? 우산 없이 걷다가는 빗물이 고일 지경인 것이다.(이 보조개는 100% 나의 유전자이다.)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내면이 잘생겨야지 하는 사람에게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마음도 곧더라고 말해주고 싶다. 배우 김혜수 씨를 봐도, 청담 부부 이정재, 정우성 커플(?)을 보아도 훈훈한 외모에 겸손한 마음씨까지 갖추지 않던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밭 심은 데 팥 난다는 자명한 이치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아빠를 닮았는지, 엄마를 닮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우선 건강히, 무사히 태어나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머리숱이 많았으면, 평발은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나의 단점을 아이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삼신할머니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밤에 너무 자주 깨지 않고 통잠을 자는 아기이기를, 자라면서는 곱고 어진 성품을 지닌 아이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일단은 비밀이다. 삼신할머니께서 비밀스러운 마음까지 꿰뚫어 보시고 굽어 살펴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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