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드라마보다 극적인 이유
삶이 극적일 때, 예상과 달리 흘러갈 때 우리는 삶을 한 편의 '드라마'에 비유하곤 한다. 멜로, 누아르, 코믹, 공포처럼 장르도 다양할뿐더러 드라마 속에 숨겨진 여러 극적 장치들 덕분에 유발되는 긴장과 재미, 웃음과 감동 등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드라마 속 세상보다 더욱 예측이 불가능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드라마는 대본에 맞게 구성된 배경과 등장인물, 예견된 사건들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어내는 기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면, 삶은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현실인 줄로 알았던 나의 삶이 모두 잘 짜인 드라마였다는, 부모님과 친구들 심지어 배우자까지 모두 배우였고, 내가 사는 집과 마을과 학교는 드라마 세트장이었다는 충격 반전을 선사해 준 '트루먼 쇼'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이 역시 영화일 뿐이었다.
남편이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 이태째였기 때문에 올 해는 꼭 붙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아무래도 일하는 아내를 서포트하느라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를 하느라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던 것이 낙방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실망감은 일단 넣어두고 고생한 남편을 다독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시험에 더 도전을 할지, 다른 일을 알아볼지 고민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7월 둘째 주 금요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에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통해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신테스트기가 집에 있었던 이유는 생리가 불규칙적인 탓에 늦어지거나 거르는 일이 잦았기에 이를 미리 인지하기 위함이었다. 단언컨대, 임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둘째 임신을 기다렸던 순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의 일일 뿐 지금은 아니었다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
'둘째는 생길 때까지 고민'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처음부터 자녀는 하나, 둘 아니면 셋 이상 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상 둘째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다. 첫 아이를 낳고 외동으로 키우면서 둘째를 낳을지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고민 또한 끊이지 않았고, 외동은 외롭다면서 둘째도 낳아 기르라는 주변의 권유도 많았다. 아이가 특별히 동생을 원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분명한 점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고, 둘째에 대한 확신이 없던 우리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 낳긴 하겠지만, 둘째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배란일에 맞춰 관계를 가진다 거나, 한약을 지어먹는다 거나, 난임 병원을 찾는 일 등)은 하지 않는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아이는 이제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섯 살이 되었고 저녁 무렵에는 우리 부부와 아이가 각자의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둘째에 대한 고민이 흐릿해지다 못해 사라지려던 참이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맞을 때면 어안이 벙벙하다. 남편의 시험 낙방과 둘째 임신을 하루 차이로 알게 되는 얄궂음이란 감사와 축복의 감정보다는 걱정과 우려의 감정을 앞세웠다. 극적인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세 식구일 때는 남편이 시험에 떨어져 전업남편을 하게 되더라도 내 월급으로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네 식구는 다르다. 이제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전업남편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나이가 올해 마흔 하나가 아니던가! 크롭티를 입기에는 적당할지 모르나 둘째를 낳아 기르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크다. 마흔둘에 아이를 낳게 되면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나는 쉰 살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쉰 살이라니! 둘째에 대한 고민은 예상치 못한 때에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서 완벽하게 해결이 되었으나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부분이 그러하고 직장에서 내 자리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이 불가피할 것이고 휴직은 이 두 영역에 타격을 가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하루 종일 일렁이는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에 타 있는 기분을 느끼는 내 몸이다. 안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뭘 먹으면 메스꺼우니 잠들기 전까지 괴로움의 연속이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다. 소중하고 귀한 생명이 찾아와 준 것은 말로 표현을 다 못할 정도로 감사한 일이지만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마냥 기뻐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걱정과 우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뱃속의 둘째는 몇 주 사이에 콩알에서 젤리곰으로 변신했고, 우렁찬 심장 박동 소리도 들려주었다. 유일한 아이에서 첫째 아이가 된 우리의 첫 아이는 초음파 사진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미래의 동생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말로는 남자 동생이 좋다고 하지만 아빠랑 둘이 외출이라도 하려고 하면 '별이야, 오빠 갔다 올게.'하고 인사를 한다.
형이든 오빠든 다정하고 든든하게 동생을 보살펴 줄 고운 성품을 지닌 나의 첫 아이, 아이에게 동생은 어떤 의미일까? '동생이 태어나더라도 너는 엄마, 아빠의 첫사랑이라는 걸,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동생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두 배로 커지는 것이라는 걸' 매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듬해 3월이 되면 꽃향 가득한 봄과 함께 엄마 뱃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별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임신이라서 기쁨보다는 당혹감 속에서 몇 주를 보냈지만, 아이와 눈을 마주할 때에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겠다. 삶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말)
이렇게 오래도록 글을 놓게 될 줄 몰랐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임신도 아닌데 낯설고 생경한 초기 증상들 때문에 온 몸에 진이 다 빠져버리기 일쑤네요. 여름잠이 시작된 이유이기도 했고, 깨어난 이후에도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임신이라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그런지 모르겠지만(이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립니다만..) 입덧이 날로 심해져서 병원에서 약 처방까지 받았습니다. 입덧 약이라니, 세상 참 좋아졌네요! 그래도 정상 컨디션은 아니라서 글을 자주 올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잘 읽지도 못할 것 같고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선선해질 즘에는 자주 찾아뵐 수 있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