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달달 Jan 31. 2023

주말엔 명품관 아니, 키즈카페 오픈런!

벌써부터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고?

- 엄마, A이모한테 물어봐 줘. 이번 주에 A랑 같이 키즈카페 갈 수 있는지.

- 일단 물어는 볼게. 근데 안 된다고 해도 속상해 마. 엄마랑 놀면 되니까.

- 싫어. 나는 A랑 노는 게 엄마랑 노는 거보다 좋아!

벌써부터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니, 혼자 입을 삐죽거려 보지만 아랑곳없는 아이가 야속하다.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상황이기도 했고, 남편이 공부를 하고 있으니 동네 산책, 놀이터 말고 아이를 데리고 시간을 내서 놀러 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다고 운전이(사실은 주차가) 여전히 두려운 내가 혼자서 아이를 태우고 멀리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여 가장 만만한 장소가 바로 키즈카페. 아이가 더 어릴 때에는 엄마인 나와의 상호작용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둘이서 키즈카페에 가도 잘 놀았는데 또래놀이를 시작한 이후로는 키즈카페에 함께 가서 '놀' 친구를 필요로 했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경우라면 그들이 서로의 동무가 되어주겠지만 외동인 아이의 친구 찾기는 매번 엄마인 나의 숙제이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육지에 있고 그들의 첫째 아이들은 이제 곧 6학년이 된다. 둘째가 있는 경우도 이미 초등학생이니 꼬꼬마인 우리 아이와는 레벨이 다르다. 반면 남편은 친구들 중 결혼과 출산이 빠른 편이어서 남편 친구의 아이들은 이제야 2-3살이다. 역시나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4살 정도까지만 해도 이성과 동성의 구별이 없이 잘 놀았지만 5살이 되면서 여자아이들은 핑크공주, 남자아이들은 로봇이나 좀비, 각자의 세계로 빠져든다. 서로의 교집합을 잃은 아이는 어울릴 수 있는 친구의 폭이 좁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A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자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 친구로서 직장어린이집 2년을 함께 다녔으니 그 존재감이 엄마 아빠를 뛰어넘는다. (곧 병설유치원에도 함께 갈 예정이다.)


- 이번 주말에 일정이 어떻게 돼? 키즈카페 오픈런 가능?

- 좋죠!

키즈카페 오픈시간에 도착해야 사람들에 치이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다. 주말 오전 10시, 명품관도 아니고 키즈카페 오픈런을 하는 이유이다. 도착하자마자 방방을 접수한 아이들은 이내 키즈카페 전체를 누빈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아이들이 땀을 뚝뚝 흘리며 엄마들 곁으로 찾아올 때는 하나의 이유밖에 없다. 배가 고픈 것이다. 사발면과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놀기 위해 출동이다. 놀고 싶은 마음은 핑계일 뿐 아이들이 키즈카페에 오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사발면과 아이스크림인지도 모른다, 엄마들은 집에서 보다 키즈카페에서 조금 더 관대해지기 마련이니까. 놀고, 먹고, 다시 놀다 보면 어느새 3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점심시간 이후 슬슬 키즈카페가 붐비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두 뺨이 불콰해지도록 뛰어놀았는데도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는 날도 있다.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은 그 마음은 어린 아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덕분에 엄마들도 수다꽃을 피운다) 그 옛날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이나 동네 골목에서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놀다 보면 여기저기서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철수야, 영희야, 저녁 먹어라!' 몇 번의 부름 끝에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향할 때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언제까지고 놀고 싶다고 놀기만 할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도.


- A야, 우리는 여기에 앉자.

- 그래.

엄마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아이들은 엄마들 옆자리 대신 테이블을 따로 잡았다. 매장에 설치된 티브이 속 광고를 보면서 키득키득, 앞으로 함께 다니게 될 병설유치원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면서 꺄륵꺄륵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야말로 이 세상 모든 소리 중 가장 사랑스러운 소리가 아닐까. 아이에게 여동생이 생긴다고 해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라 서로 벗삼아 놀기는 어려울 테니 A와 오래도록 형제처럼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맞춰 오래도록 우정을 나누는 시간들이 서로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옆에서 무리 지어 노는 형들을 바라보던 아이가 '엄마, 나는 형이 왜 없을까?' 하고 물음인 듯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모르는 동생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지면 다가가 뒤에서 안아 일으켜주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어린 동생이 있으면 혹여 옆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그 옆에 서 있다가 양팔을 벌려 보호해 주는 듬직한 형아이지만 정작 아이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형이나 누나가 없다 보니 외롭기도 한 모양이다. 세상의 모든 첫째들이 느낄 맏이의 무게일 테지. 형이 없는 서러움이 단짝으로 채워질까마는 때론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사이도 있는 법이다.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다던 아이의 말이 더는 서운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전 11화 아들을 키우려는 자, 손빨래의 무게를 견뎌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