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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30. 2022

어머니, 유치원 등록을 취소해도 될까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보다 어려운 선택

‘ㅁㅁㅁㅁ유치원’

회사에 있을 때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전화 중 발신자에 아이의 유치원(어린이집)이 뜨는 경우 온 신경이 예민해진다. 아이가 다쳤나? 아이가 아픈가?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폭죽 터지듯 여러 생각들, 걱정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파바박하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아이가 열이 나서 바로 하원을 바란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있었다. 데리러 올 때까지 다른 친구들과 격리되어 교사 방에 분리 조치하겠다고 하니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을 하던 도중이라 아이를 데리러 가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공부하느라 독서실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하면 공부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은데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백수’ 남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남편이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남편의 전 직장은 집에서도 40-50분 거리였으니 아이 유치원까지는 한 시간은 걸릴 터였다. 하는 수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유치원으로 달려가야 했을 이는 바로 나였을 것이다.


이번에 걸려온 전화는 다행히도 아이의 신변에 관한 건 아니었다.

- 어머니~! ㅇㅇ가 다른 유치원이랑 이중 등록된 걸로 뜨는데 혹시 내년에 다른 유치원 가기로 한 거면 지난번에 재등록 신청하셨던 거는 취소해도 될까요?

- 아!!!!! 선생님, 그게...... 집 앞 병설유치원에 기대도 없이 지원했는데 됐더라고요. 혹시 몰라서 등록은 했는데 아직 ㅇㅇ가 더 생각해본다고 해서요. 지금 유치원에 계속 다니고 싶어 했거든요.

- 그런데 어머니, 그 유치원에 같이 합격한 다른 친구가 있다면서요? ㅇㅇ가 일곱 살에는 그 친구랑 병설유치원에 같이 갈 거라고 친구들한테도 자랑하더라고요.

순간 머쓱했다. 아이 핑계를 대고 유치원 최종 결정을 조금 미뤄보려고 했는데 더는 그러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 아, 그래요? 그새 마음을 정했나 봐요. 그러면 취소해주세요......

전화를 끊는 말끝에 미련이 맴돌았다.


초저출산 시대라고 하는데 정작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실감을 하지 못한다. 키즈카페에 가도 아이들은 넘쳐나고,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면 아픈 아이들로 기본 대기 시간이 30분을 넘어간다. 유치원 입학이 가능한 다섯 살에는 지원한 유치원에 떨어져서 직장어린이집에 1년을 더 다닌 후, 올해 여섯 살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원래는 또 떨어져, 대기 3번이었다가 운 좋게 자리가 나서 12월 중순쯤 등록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함께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의 친구는(이 친구가 내년에 같은 병설유치원에 가게 된 친구이다) 떨어져서 여섯 살에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이 제주에만 많은 것인가? 부모들이 마음 편히 아이를 유치원에도 보내지 못하는 실정인데 저출산 대책은 대체 누구를 위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 한 곳만 1 지망으로 지원했다. 떨어지면 지금 유치원에 계속 보내면 되고, 실제로 아이는 친구들과 헤어질 수 없다며 유치원 옮기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마저도 일단 병설유치원에 합격을 해야 할 수 있는 고민이었으므로 지원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지, 합격해서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는 없었다. 제주에서는 병설유치원뿐만 아니라 사립유치원에 보내기도 쉽지 않아 7세까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데다, 현재 유치원에 아이가 만족하며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졸업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초등학교로 연결될 것이라는 점, 무엇보다 집 앞이라는 점에서 지원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유치원이 차로 20분 거리에 있으니 왕복 40분에, 중간에 주차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시간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리므로 좋은 대안임에 분명했다.


현재 다니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원복을 입기 때문에 일명 '등원룩'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 하고(1학기에 입었던 원복이 2학기에는 맞지 않아 요즘은 매일 자유복을 입고 다니는 중이라 그 의미가 퇴색했을지라도) 독서, 음악, 과학, 미술 등 교육프로그램도 잘 짜여 있는 편인 데다, 매주 현장체험 학습을 가는 건 이곳을 계속 보내고 싶은 이유들이다. 또한 1년 동안 익숙해진 공간, 친해진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아이를 생각하면 굳이 집 앞이라고 해서 병설유치원으로 옮기는 게 정말 더 좋은 선택일까, 부모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주에 병설유치원 등록을 하고서 이틀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이다. 무엇하나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던 차에 선생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셔서 다행이다. 작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치원에 떨어지고 대기 번호가 줄어들기만 바라고 있을 부모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빨리 결정을 했어야 했는데 이기적인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양손에 유치원 두 곳을 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니, 복에 겨워도 한참 겨웠다.


뭘 먹을 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몇 명인지 인원 수만 확인되면 바로 준비된 음식이 나오는 식당들이 있다. 메뉴가 하나뿐인 이런 식당은 대체로 맛집인 경우가 많다. 사장님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과감한 방침 덕분에 손님들은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택지가 하나일 때는 재고 따지지 않는다. 그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지만 비교 대상이 없으니 대체로 만족감이 높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둘 중 무엇을 시키더라도 아쉬움이 남았던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새롭게 다니게 될 병설유치원과 내년에는 포기해야 할 사립유치원 중에 어떤 유치원을 선택하더라도 100%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일이 아니라, 아이의 일이니 나의 어떤 선택이 아이에게 더 좋을지 사실 가늠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기존 유치원의 재등록을 포기했고 되돌릴 수 없다. 유치원 하나 정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앞으로 아이를 어찌 키우나 싶지만 그건 또 그때마다 헤쳐나갈 일 아니겠는가? 망설이긴 했으나 과감히 재등록을 취소함으로써 어떤 부모님과 그들의 아이는 다니고 싶은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은 어쩌다 찾아온 나의 행운을 나눈 것으로 족하다.



* 커버사진 출처: JTBC ‘스카이캐슬’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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