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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05. 2022

우아하지 않은 임신의 세계

그럼에도 감사한

불룩! 불룩! 움찔! 움찔!

뱃속의 별이가 불룩 불룩 태동을 할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한다. 아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구나, 안심이 되면서도 좁은 자궁 안 구석구석을 얼마나 바쁘게 탐색하는지 쉬지 않고 꿈틀대는 녀석이 영 적응이 안 된다. 배도 이제 제법 나왔다. 늦은 임신이 쑥스러워 사람들이 ‘배 많이 나왔네!’ 할 때마다 ‘내 배야~’ 하곤 했는데 이제 정말 임산부 태가 난다. 다행히 평소 입고 다니던 원피스들이 품이 넉넉해서 티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이 간다. ‘임신 경력단절’ 몇 년 차이던가? 내 몸이 하루하루 변해갈수록 아기는 어느새 손가락, 발가락까지 다 생겼다. 작은 점에서 강낭콩이 되었던 별이는 사람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호르몬 때문인지 얼굴에 기미가 거무스름하게 올라왔다. 아가를 위한 모유를 만들기 의한 준비를 하느라 유선이 발달하면서 가슴은 커지고 유두와 유륜의 색이 짙어졌다. 배가 볼록 나온 건 말할 것도 없다.(몸무게는 두말하면 입아프다.) 울렁거림이 가라앉으면서 속 쓰림이 심해졌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배가 나오면서 위가 눌리니 위액이 역류해서 어쩔 수 없다며 겔포스 한 봉지씩 먹으라고 하셨다. 퇴근하고 오면 다리가 띵띵부어 양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며칠 전부터는 자다가 종아리가 뭉치면서 일으키는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다. 재채기라도 하려면 소변이 새어 나올까 몸에 잔뜩 힘을 주게 된다. 임신을 한 여자들이 겪게 되는 몸의 변화들이며 홀몸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는 불편감이 있다. 무엇보다 요즘 축구 월드컵 시즌인데 경기 일정이 있을 때 치킨에 맥주 한 잔을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


임신의 과정이 신기하고 경이로운 것은 사실이다. 한 생명을 품은 산모의 몸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너무 태아에게 집중된 관심은 불편한 감정이 들게 한다. 가령 음식을 먹으러 갔을 때 특히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을 때 ‘이거 아기한테 좋은 거야!’ ‘이거 먹으면 아기 머리가 좋아진대.’ 하며 모든 게 뱃속의 아기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물론 본능적으로 조심하게 되는 것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커피를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임신 초기에는 회를 먹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 펌이나 염색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대가 베푸는 친절의 대상이 내가 아닌 뱃속 태아일 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다. 마치 내가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어떤 배양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부터 소고기를 좋아하고 전복구이를 좋아한다. 그저 ‘맛있게 먹어라.’ 한 마디면 충분하다. 아기 생각해서, 아기한테 좋은 거니까, 라는 말은 산모인 내가 배제된 것 같아 어쩐지 서운하다.


‘모성애가 없는 거 아니야? 아기 생각해주면 좋은 거지 뭐 그리 불평이야?‘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몇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첫째에 대한 마음도 아이를 품에 안고 눈 맞추고 뺨을 대며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점점 더 커지는 것으로 보아 둘째에 대한 모성애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 같다. 모성애는 여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 아니다. 또 하나는 첫째를 낳아 기르고 있음에도 엄마가 된다는 건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아이가 한 명인 지금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고 있는지 늘 의심하는데 둘을 키우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된다. 첫째와 둘째 모두를 동시에 잘 돌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둘째에게 손이 더 갈 텐데 첫째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아, 갓난아기는 어떻게 안아주는 거였더라? 목욕은 잘 시킬 수 있을까? 첫째 아이가 이유 없이 울기라고 할 때는 엄마로서 부족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아이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더랬다. 참전 용사의 마음으로 매일을 치열하게 육아에 에너지를 쏟다가 이제야 조금 내 시간이 생겨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갓난아이와 나로 한정된 육아의 세계에 고립될까 봐 걱정이 된다. 불편하다는 감정은 결국 나의 불안과 맞닿아있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육아의 끝물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니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아기 살 냄새를 맡을 생각에 설레고 기쁘다는데, 둘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쁘기만 하다던데 아무래도 낳아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품에 안아봐야 실감이 나려나보다. 엄마의 걱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뱃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태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기의 태동이 씩씩하다. 꼬물꼬물, 꿈틀꿈틀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으니 불안은 지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더욱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미리 선물받은 베넷저고리를 꺼내자 첫째가 달려와 연신 귀엽다고 난리법석이다.

-너도 요렇게 작았어!

했더니

-내가아??? 말도 안 돼!!!

한다. 아이와 한바탕 웃고 있는데 손은 배를 쓰다듬고 있다. 엄마의 온기가 느껴질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생명을 키워내는(이미 키워내신)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내고 싶다. 태아도 물론 소중하지만 태아뿐만아니라 이 우아하지 않은 임신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모든 산모들이 그 자체로 더 많은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희망한다.


< 임산부 먼저, 권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배려해주시면 임산부에게 힘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이미지출처: 인구보건복지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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